주일설교

Title2015.01.11 - 애통하는 자
Authorberlin-visionCount181Date2015/01/12

■ 금주 설교요약     본문: 마 5:4       제목 : 애통하는 자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 중 두 번째 복은 애통하는 자가 받는 위로의 복입니다. 이 복도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철저하게 구별되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철학은 여러분의 두통거리를 잊어버리고 할 수만 있으면 피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복은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가르칩니다. 참으로 애통하는 자들만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1. 육적인 애통, 위선적인 애통이 있습니다.

인간적이고 육적인 애통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울고, 재산에 큰 손실이 났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웁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저희는 눈물골짜기를 통행 할 때에”라고 표현한 것처럼 인간의 역사는 슬픔과 눈물로 가득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눈물을 흘린 자들에게 성경은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위선적인 애통도 있습니다.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뺏지 못해 애통해 하였으며 (왕상 21:4), 유다는 은 30냥을 다시 돌려주면서 “내가 죄를 지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애통은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후회였습니다. 악인의 눈물은 고통의 불 때문에 억지로 우는 눈물입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지만 마음은 몹시 완고합니다.

 

2. 복음적 애통이 있습니다.

‘애통하다’는 뜻은 죄와 관련하여 ‘슬퍼하다. 눈물 흘리다’라는 의미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의 죄 와 영적인 상태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영적 생활에 게을렀고 은밀하게 지은 죄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 때문에 침상을 띄울 정도로 울었고,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죄 때문에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서도 애통해야 합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이 시대의 불의와 죄악상을 보면서 울어야 하고, 그리고 교회의  고통과 영적 상태에 대해 울어야 합니다. 시인이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시 137:1)고 했는데 우리들 역시 한국교회가 세속화 되어가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울고,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고 있는가에 대해 울고, 또한 유럽교회가 선교지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들은 울어야 합니다.

 

3.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위로하십니까? 예수님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애통하는 자를 위로하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으며 즐겁게 되고 행복하게 됩니다. 거룩한 애통에 반대되는 것은 “:굳은 마음” 즉 “돌 같은 마음” (겔 36:26)입니다. 영적인 애통자가 되려면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깨트리고 보혈의 피로 씻어 부드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부흥의 역사를 보면 회개에서부터 시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회개가 축복이요 은혜와 부흥입니다.

 

적용 및 나눔

1) 위선적인 애통과 복음적인 애통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울어야 하는가요?

2) 애통하는 자는 어떤 복을 받는가요? 부흥을 체험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요?

Previous2015.01.04 – 심령이 가난한 자
Next2015.01.18 – 온유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