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3.11.17 -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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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120 | Date | 2013/11/17 |
■ 금주 설교 요약 본문: 고전 1:1-18 제목 :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 “십자가의 메세지는 멸망하는 자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 구절은 엄청난 의미가 함축돼 있어서 한 편의 설교로 다 설명하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성경에서도 가장 도전을 주는 의미 깊은 말씀이기에 전심으로 상고할 가치가 있는 말씀이다.
1) 오직 두 길 이 구절을 상고함에 있어 극도의 진지함을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오직 두 길의 선택이 있기 때문이다. 각 길은 영원하고 그 결과는 영원까지 미친다. 이것은 주님의 가르침이며 어느 인간이 고안해낸 이론이 아니다.바울은 이 구절에서 “멸망하는 자”와 “구원얻는 자’의 오직 두 종류의 인간만이 있음을 선포한다.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은 이 두 범주의 하나로 나눠지며 예외란 없다. 어떤 소위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제 3의 길—즉 연옥이 있다고 가르친다. 연옥의 교리는 사실상 마귀의 가르침이다. 성경에는 그 같은 가르침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2) 수치의 십자가 왜 기독교는 항상 십자가를 중심하고 있는가? 언제, 어디에서부터 그것은 시작되엇는가? 기독교의 초기에는 그 같은 십자가가 상징으로 사용되지 않았엇다. 십자가가 영광의 자리로 간주된 적은 결코 없었다. 고대 로마 시대의 형벌제도에서 십자가형은 범법자가 아주 천한 신분임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십자가형은 가장 불명예스런 죽음으로서 원래는 노예들을 처벌하는 수단이었다. 그것은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한 수치의 장소였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이 십자가를 맹렬하게 거부하엿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기의 아들을 그런 수치의 죽음을 당하게 하는 하나님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십자가에 달려죽은 메시야를 유대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에서 자기 민족을 해방시켜 줄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렸기에 십자가에 걸려 넘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불쾌하게 여긴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십자가를 어리석음의 극치로 여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메시야가 십자가에 달려죽는 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극도의 넌센스이다.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멧세지가 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아직도 십자가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십자가의 멧세지는 그들에게 거부감을 주거나 조롱을 하게 만든다. 이처럼 세상의 눈에 십자가는 수치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복음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십자가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다. 아멘!
적용 및 나눔 1. 인생의 두 가지 길은 무엇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십자가를 거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2. 나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하였는가요? 이 십자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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