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15.05.17 - 반제 컨퍼런스를 다녀와서
Authorberlin-visionCount263Date2015/05/17

■김현배목사 부흥칼럼(64)  반제 컨퍼런스를 다녀와서”   2015.05.17

교회에서 실시하는 유적지 탐방 제 6차, 어제 9일 토요일에 교리 공부를 마치고 권사님과 집사님, 세진, 이레와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 함께 반제 호스로 갔습니다. 반제 회의장소를 둘러보고 시내로 나와 잔디 밭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서 즐거운 교제 시간을 가졌습니다. 준비해온 맛있는 참치 초밥과 베이컨 마리, 샌드위츠, 빵, 커피 등을 마시면서 행복한 공동체임을 다시한번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몹시 힘들고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반제 컨퍼런스 회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반제 컨퍼런스(Wannsee Conference)’sms 보통 ‘반제 회의’라고 칭하는데, 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월 20일 히틀러의 명령으로 베를린 근교 그로세반제(Grossen Wannsee)에서 소집된 회의입니다. 즉 당시 나치 고위 관료들의 회담을 일컫습니다. 아름다운 호수변의 한 빌라에서 비빌리에 개최되었던 반제회의의 목적은 유대인 관련 정책의 입안이었습니다. 전 유럽의 유대인을 동유럽으로 몰아내기 위한 회의였습니다. 이를 책임진 각 부서의 고위급 인사들과 회의를 주재할 인물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임명되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했던 주요인물들은 유대인 문제 담당국장 아돌프 아이히만과 체코 통독 대리로 프라하의 도살자로 불리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였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이 두 사람을 포함하여 15명의 나치 관료들, 즉 내부부 장관, 보안 경찰 등이었습니다. 결국 이 회의에서 유대인들을 절멸시키는 ‘최종해결책(final solution)이 결정되었습니다.

 

유대인 절멸 계획을 완성하는데 불과 두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던 회의 현장과 불과 15명이 수백만 유대인들의 운명을 결정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전체적인 글과 그림 등을 보면서 이러한 비극은 하루 아침이 된 일이 아니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유럽에는 이미 반 유대인 감정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히틀러가 바이마르 공화국 때 백성들에게 주입시켜 체계화 한 것입니다. 1933년 4월 6일에는 유대인 보이코트를 하였습니다. 그 이후 유대인 의사나 유대인 가게 등을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 독일인들이 못 들어가도록 독일 경찰들이 막고 있었습니다. 1935년에는 유대인과 독일 사람과의 결혼을 합법적으로 금지시키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Die Nurnberger Gesetze). 그 후에는 유대인들을 직장에서 쫓아내고 사업을 팔고 정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사회에서 차별화하고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말살전쟁(War of Annihilation) 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반제 컨퍼런스 회의 내용을 보면서 16세기 종교개혁자 칼빈이 말했던 것처럼 인간의 전적타락이 내내 생각났습니다. 모든 죄의 씨앗이 사람의 심령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인간의 본성이 부패했고, 그 죄의 씨앗이 그 부패한 모습 속에서 나타난 죄악의 열매들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둠에서 빛으로 들어가는 거듭남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상처받은 유대인들과 독일들을 위해 기도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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