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5.02.08 – 프랑스 교회 영적상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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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112 | Date | 2015/02/08 |
김현배 목사 부흥칼럼 (51) 2009.04.26 프랑스 교회 영적 상황
2015년 새해들어 지난 1월에는 파리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으로 인해 프랑스는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펜과 그림 밖에 없는 한 언론사를 향해 기관총으로 무장한 이슬람주의자 테러범들의 총격으로 얼론인, 경찰관, 시민들 총 17명의 귀한 인명이 희생되었습니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과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는 지난 50년 만에 일어난 가장 큰 테러 사건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건은 영적인 것입니다. 침체된 프랑스 교회가 다시 영적으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의 영성회복과 선교” 주제로 2009년 4월 20일(월) – 23일(목) 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제 3회 유로비전포럼에 참석하였습니다. 영국, 터키, 한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덴마크, 체코, 벨기에, 싱가폴 등 11개 국가에서 참석한 한인 목회자들과 여러 선교사, 신학자들은 각자 발제하며 이어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포럼을 통하여 많은 도전을 받았던 저는 특별히 Andre Pownall 교수님의 프랑스 개신교회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듣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강의를 간단하게 요약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프랑스 기독교는 미국 선교사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라 거의 2,000년 전부터 시작된 기독교 역사가 프랑스에 연결된다. 19세기 전부터 기독교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150년 주후 소아시아에 살던 상인들이 알프스 근처에 와서 장사를 하였다. 이때 복음이 전하여진 것 같다. 그후 믿는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이 핍박을 당하고 리용의 야외 경기장에서 기독인들이 순교하기도 한다. 기독교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북부지역 야만인의 침략으로 인해 침체기를 맞게 되지만 수도원 역사를 통해 영성이 유지되었다. 12세기 말에는 프랑스 동부 쪽에 교회들이 부흥한다. 16세기부터 인쇄술이 발달하고 개혁 분위기가 형성되고 프랑스에서 루터 개혁이 집입되자 마자 교황에 의해 핍박이 일어난다. 이때 순교자 10여명이 나온다. 성경을 가지지 못하게 하였다. 칼빈은 이미 박해로 인하여 프랑스를 떠났다. 하지만 이때 인쇄업자라든가 왕족 부인들과 지성인 사이에서 개혁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550년도에 프랑스에 2,000 개혁교회 세워지게 된다. 그 후 가톨릭 위협으로 인해 신교 구교 전쟁이 일어나 16세기 후반까지 개신교 20만명이 죽었다. 1645년 루이 14세는 개신교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개신교 20만명을 추방시킨다. 1787년도에 개신교가 프랑스에서 다시 허용되기 시작한다. 나폴리용 1세는 종교로 장악하고 있었는데 나폴레옹이 유대고, 불교 기독교, 천주교를 동등하게 인정하였다. 1802년에 교회가 국가에 귀속하는 것을 만든다. 지금 프랑스는 천주교의 나라이다. 개신교는 이단으로 취급받는다. 프랑스 인구는 약 5, 600만명, 그중 개신교는 2%이다. 이것이 프랑스의 영적 현실이다”. 이상이 교수님의 강의 요약입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저는 프랑스 교회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고 또한 프랑스 교회 역사 속에 부흥도 많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도들이 많은 핍박과 운둔 생활을 하며 그들은 사막 속에 비밀리에 모였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프랑스 교회사를 보면 시대마다 핍박과 부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는 점점 침체되어 가면서 선교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개신교는 약화되었고 무슬림은 600만명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샤를린 에브도 테러 사건을 통해 우리는 프랑스 교회가 다시 영적으로 깨어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프랑스에 부흥을 주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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