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14.11.09 –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Authorberlin-visionCount181Date2014/11/10

김현배 목사 부흥칼럼(38) 2014. 11.09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할레 (Halle)는 동독 특유의 우중충한 느낌을 주지만 교육, 문화, 행정의 중심입니다. 루터 가도의 허브와 같고, 루터가 마리엔 교회에서 여러 차례 설교했으며, 교회사적으로는 실천, 경건, 삶을 강조하는 경건주의 요람이며, 슈패너 목사에 이어 경건주의자 프랑케 목사가 이곳에서 사역을 했던 유명한 곳입니다. 또한 할레는 독일의 대표적인 경건주의 목회자들은 요한 아른트 (John Arndt, 1555-1621), 필립 야콥 슈페너 (Philipp Jacob Sperner, 1635-1705),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Herman Francke, 1663-1727), 진젠돌프 (Graf von Zinzendorf, 1700-1760)입니다. 이들 가운데 저는 오늘 프랑케에 대해 소개할려고 합니다.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는 법학박사인 아버지의 학구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는 에르푸르트 대학과 킬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684년 라이프찌히에서 대학 교수생활을 했으며, 그리고 안톤 (Anton), 샤데 (Shade) 등과 함께 성서회를 만들어 성경연구와 기도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지난 8월 한국의 온세계교회 중유럽 비전트립팀들과 함께 프랑케 재단 (Franckesche Stiftungen) 외관을 방문하였습니다. 할레에서 성경을 실천하는 삶을 강조한 프랑케는 프랑케 재단을 만들고 각종 영적 사회적인 사역들을 시작하였습니다. 학교와 교육 시설, 고아원을 세웠고 약국, 성서 출판사, 병원 등도 설립하였습니다. 5층 건물 맨 위에는 이사야 40장 31절 말씀이 새겨져 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 한 구절이 프랑케 재단의 모든 정신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프랑케의 비전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저는 많은 감동을 받았는데 특별히 저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부모 없는 고아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경건주의 부흥이 일어났던 할레, 그 주역인 프랑케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약간의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할레대학(Halle Universität)은 경건주의 개척자들인 슈페너와 프랑케 등의 인물을 중심으로 대학을 세웠는데 유럽 최초의 근대 대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사상과 탐구 정신 그리고 경건주의 학풍으로 할레 대학은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을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할레대학은 반세기 동안 약 6,000명 이상의 목사를 배출하여 온 세계로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영국에 선교사로 갔다가 브리스톨에서 고아의 아버지로서 고아들을 먹이고 키우던 죠지 뮐러 목사와 한국과 중국에 복음을 전했던 귀츨라프 선교사입니다. 무엇보다도 독일 경건주의의 가장 큰 업적은 근대 선교운동을 촉발한 사건일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복음 들고 바다를 건너 모라비아 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잉글랜드와 미국에 영적인 밭을 일궈 부흥의 여명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초대교회의 생동성과 사랑과 능력을 사모하면서 예배의식과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와 신학에서부터 경건에 이르기 까지 많은 변화를 주었으며, 사회적, 문화적 삶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수 많은 교파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누룩처럼 조용히 형식화되어가는 독일교회를 생명력있게 변화시켰습니다. 삶, 경건, 생명이 필요합니다.

Previous2014.11.02 – 종교개혁 기념예배에 다녀와서
Next2014.11.16 – 진정한 감사와 감사일기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