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4.06.15 – 위대한 전도자 디엘 무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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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543 | Date | 2014/08/22 |
김현배 목사 부흥칼럼(18) 2014. 6. 15 위대한 전도자 디엘 무디
드 와트 무디는 1937년 2월 5일 미국 메사츄세츠 주의 노스필드에서 태어났습니다.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형제 9명을 혼자 키우며 어려운 살림을 살아가면서도 자녀들을 신앙으로 키우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주일날 교회에 빠지지 않고 다니도록 교육하였습니다. 무디는 집안이 가난하기 때문에 열 살 때부터 객지 생활을 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큰 도시인 보스톤으로 가서 양화점의 점원으로 일하며 신앙의 회의와 갈등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나 끊임없는 어머니의 권면의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주일학교 선생님인 에드워드 킴볼 씨가 1855년 4월 21일 무디가 일하는 제화점을 방문하여 함께 기도하므로 성령체험을 받게 됩니다.
노스필드의 개구쟁이, 보스톤의 구둣방 직공이었던 디엘 무디는 성령받고서 어린이 전도와 시내에서 가장 불량한 곳, 부두 노동자들, 역 대합실, 하숙집, 여관 뒷골목, 감옥의 죄수들, 거리 모퉁이의 실업자들, 병원의 환자들을 찾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무디는 전도하기에 바빴으며 주일학교 성장은 의자 네 개의 18명으로 시작하여 100명, 300명, 500명, 700명, 800명, 1500명을 넘어섰습니다. 창고가 작아서 큰 홀이 있는 맥주 집을 빌려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무디는 1일 1명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를 기도하고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무디는 남북 전쟁 때에도 최전방까지 가서 전도집회를 여러 차례 인도하였습니다.
1899년 12월 22일 드와이트 L. 무디는 위대한 전도자로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무디의 최고의 좌우명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무디를 통하여 19세기 미국에 영적부흥이 일어났으며 무디의 영향력은 미국 뿐 아니라 영국과 유럽, 한국까지도 미쳤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미국 시카고에서 열렸던 한인 선교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무디 신학교와 무디가 섬겼던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영혼 구원의 열정을 갖고서 뜨겁게 목회하였던 교회 본당에 들어 섰을 때 저에게는 벅찬 감격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참으로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시카고와 미국에 무디의 영성이 시카고에 배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디엘 무디 영성의 핵심은 그의 성령체험과 영혼구령에 불타는 열정, 그의 뜨거운 기도생활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디의 영성입니다. 청교도 본 번연이 말한 것처럼 이 땅은 영적 전쟁터요, 우리는 영적 군사들입니다.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충만해야 합니다. 또한 구령의 열정으로 불타 올라야 합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복음 들고 찾아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무디의 생애를 본받아 전도자의 삶을 살며 매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에게 무디의 영성이 다시 살아나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는 생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 주님 무디의 영성이 우리 안에서 리바이벌되게 하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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