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4.5.18 - 왈도파의 신앙 유적지를 찾아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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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259 | Date | 2014/05/24 |
김현배 목사 부흥칼럼 (14) 2014.05.18 왈도파의 신앙 유적지를 찾아서
제 21회 유럽 목회자 세미나가 “초대교회적 영성회복”이라는 주제로 4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렸습니다. 세미나에는 유럽 13국에서 80여명의 목회자와 선교사 부부들이 모였습니다. 3일간의 세미나를 마친 후 참석자들 일행은 이탈리아 토리노 (Torino)의 계곡에 있는 왈도파의 예배 장소인 산 속에 있는 동굴 현장을 탐방하였습니다.
교황청이 말할 수 없을 만큼 타락했던 중세 시대에 12세기 프랑스의 왈도파 (Waldenses)는 성경의 권위를 믿었고, 성경적 설교를 하며, 청빈한 삶을 살고 전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랐습니다. 당시에는 평신도들이 주교 허락없이 설교하는 것을 금했는데 평신도인 왈도파는 주교의 공적 허락도 받지 않고 거리에 나가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결국 교회 당국자들은 교황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184년에 왈도파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모두 전멸시키라는 교황칙령을 공포했습니다. 왈도파들에게 고난이 시작된 것입니다. 수 세기 동안 종교 재판의 표적이 된 왈도파는 많은 박해를 받으며 비천한 삶을 살았으며, 이탈리아로 넘어와서 깊은 산 속 동굴에 숨어 지냈습니다. 그 당시 종교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700 미터 이상을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왈도파는 약 800-1,000 미터 높이에 있는 깊은 산 속에 있는 동굴 안에서 모였습니다. 동굴이 교회인 왈도파는 그곳에서 기도하며 예배를 드렸으며, 추운 겨울에는 옮겨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어 그곳에서 성경 공부하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이곳 동굴을 찾아간 목회자들 일행은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 하겠네”라고 찬송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소리 내어 찬송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샤포란’이라 불리우는 이 마을에서 왈도파 설교자들은 개혁교회와 함께 하고 종교개혁에 참여할 것과 불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하여 일반인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 구절을 암송하기 시작했고, 둘씩 짝을 지어 거리에서 신약성경을 일반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번역된 성경을 읽은 일반인들은 곧 교황청의 잘못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심령에서 영적 각성이 일어나게 되었고 왈도파의 신앙은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왈도파는 우리가 더 이상 숨지 말고 당당하게 예배드리자고 결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결단으로 둘기둥 모양의 기념비를 세웠고 이탈리아 마을 곳곳에 교회를 지었습니다.
목회자 일행은 그 중에 하나인 왈도파 교회를 찾아갔는데 그 교회 강대상 위에는 “Dio e’ Amore”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사도들처럼 복음을 전하면서 숨어 지내기도 했던 왈도파는 교황의 명령에 따라 수 많은 박해와 학살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12세기부터 약 600년 동안 핍박을 당했고 19세기에 와서야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16세기에 종교 개혁자들에게 많이 귀의 했고, 약 600년간의 핍박으로 약 2백만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왈도파의 순교의 피는 유럽 부흥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12세기 왈도파의 신앙생활에 많은 은혜와 도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좀 더 투철한 믿음으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갈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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