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14.02.16 - 조선을 품은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Authorberlin-visionCount211Date2014/02/17

김현배 목사 부흥칼럼 (6) 2014년 2월 16일

조선을 품은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제가 영국에 있었을 때 토마스 선교사가 자라났던 웨일즈에 있는 하노버교회에 자주 갔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예배 시간에 설교를 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 민족을 위해 최초로 순교한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님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토마스 선교사는 복음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미전도 종족인 조선을 품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칼럼에서는 한국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866년 9월 5일 조선과 한사코 교역을 원하던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변에서 좌초되었습니다. 당시 이 배의 선원들은 침략선이라고 판단했던 조선병사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배 안에는 선교를 위해 조선에 입국하고자 하는 영국인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가 타고 있었습니다.조선군은 솔가지와 땔나무를 여러 척의 배에 가득 싣고 셔먼호에 다가가 불을 붙여 일제히 배 안으로 집어 던졌습니다. 이 불이 화약에 옮겨 붙으면서 배 안은 순식간에 불길로 휩싸였습니다. 불길을 피해 강물로 뛰어든 선원들은 기다리고 있던 조선군의 창에 찔려 죽고 곤봉에 맞아 숨졌습니다. 강물이 금방 핏빛으로 변했습니다. 이 와중에 배 위에서 백기를 들고 화염 속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강쪽으로 사력을 다해 책들을 던지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토마스 선교사였습니다.

 

죽음을 직감한 토마스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있는 힘을 다해 육지 쪽으로 성경책을 던졌습니다. 한 권이라도 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성경을 전하는 일이 그의 마지막 소원이었습니다. 그는 한 권의 성경을 품에 안은채 강 언덕위로 끌어 올려 졌습니다. 그때 토마스는 품에서 성경을 꺼내어 자기를 치려는 병사에게 주면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엉겁결에 성경책을 받아든 박춘권은 순간 마음이 이상한 감정으로 일렁거렸습니다.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토마스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기도를 올렸고, 마침내 병사의 칼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 토마스의 나의 27세였습니다. 이때 그에게서 성경을 받았던 박춘권은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장사포의 홍신길은 서가교회의 설립자가 되었고, 만경대의 최치량은 평양교회의 창설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종이가 너무 좋다고 그 성경을 한 장 한 장 뜯어 벽지를 바른 박영식의 집은 널다리교회의 예배처소가 되었습니다. 토마스는 최후의 순간까지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가 남긴 씨앗은 열매가 되어 오늘날까지 확산되고 있으며 토마스의 영혼의 향기는 계속하여 남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소중하게 붙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래 전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로 인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헌신과 열정과 순교의 피로 인해 주님을 알게 되엇고 복음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영국인들에게 많은 복음의 빚을 졌습니다. 또한 독일의 귀츨라프 선교사도 몇 개월이지만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그래서 독일인들에게도 우리들은 복음의 빚을 졌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우리들을 독일 땅으로 흩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곳에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교회에 다시한번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가득하도록 우리들은 힘써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Previous2014.02.09 – 1904년 웨일즈 대부흥
Next2014.02.23 – 1907년 평양 부흥운동(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