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23.01.29 - 베토벤과 슈베르트
Authorberlin-visionCount39Date2023/01/29

부흥칼럼(457)                    “베토벤과 슈베르트”                     2023.01.29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으며, 성인이 된 이후 거의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습니다. 독일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환기에 활동한 주요 음악가이며, 종종 영웅적인 인물로도 묘사됩니다. 모든 음악가를 합친대도 베토벤 한 사람만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그의 생애를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음악의 성인(聖人) 즉 악성(樂聖)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립니다. 그는 감기와 폐렴의 합병증으로 투병하다가 5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엘리제를 위하여, 비창 소나타, 월광 소나타, 전원 교향곡, 운명 교향곡, 교향곡 3번, 교향곡 9번 등 많이 있습니다.

유명한 작곡가인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슈베르트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으며, 1815년 18세 때에 그의 재능을 아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수백 곡의 가곡을 썼습니다. 관현악곡·교회 음악·실내악·피아노곡 등 명작이 많은데, 특히 리트(독일 가곡)에 뛰어난 작품이 많으며, 19세기 독일 리트 형식의 창시자입니다. 그는 가난과 타고난 병약함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600여 편의 가곡, 13편의 교향곡, 소나타, 오페라 등을 작곡했으며, 가곡의 왕이라고 불립니다. 천재 슈베르트는 문란한 생활로 얻은 매독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3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소에 베토벤을 존경해왔던 슈베르트는 그를 만나고자 했지만 자신의 소심한 성격 탓에 쉽사리 만날 용기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인들의 권유로 슈베르트가 용기를 내어 1827년 3월 19일, 베토벤 집에 방문하여 만나게 되었습니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에게 인사하는 한편 자신이 작곡한 악보를 보여줍니다. 베토벤은 슈베르트로부터 받은 그의 악보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이렇게 늦게 만난 것에 대해 후회를 했고 슈베르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네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내 명은 이제 다 되었네. 슈베르트, 자네는 분명 세상을 빛낼 수 있는 훌륭한 음악가가 될 것이네. 그러니 부디 용기를 잃지 말게.”

모진 역경을 딛고 음악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 베토벤은 임종 전 하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9번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반면 천재 슈베르트는 문란한 생활로 얻은 매독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베토벤과 슈베르트는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슈베르트는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음악가로서 영예를 누렸지만 재산을 탕진하고 몹쓸 병을 얻어 쓸쓸히 죽어 간 반면, 베토벤은 역경을 딛고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최후를 살았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지만 천재 슈베르트 음악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 볼 수 없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위대한 두 명의 음악가들의 삶의 여정과 마지막을 보면서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존귀함을 받는 그런 인생, 또 음악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던 베토벤처럼 우리의 삶 전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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