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22.09.25 - 빌리브란트의 통일 독일 리더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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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48 | Date | 2022/10/02 |
부흥칼럼(439) 2022. 09.25 빌리 브란트의 통일독일 리더십 빌리 브란트(Billy Brandt)의 통일독일 리더십이 도전을 줍니다. 그는 1969년 9월, 독일 사회민주당(SPD) 소속으로 서독의 4대 총리로 취임하면서 1969년 10월 28일 동방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영어로는 신 동방정책(New Eastern Policy)으로 번역합니다. 즉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erung durch)이며, 우리나라의 햇빛 정책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동방정책(Ostpolitik)의 주요 목표는 동서독 관계를 정상화하고, 인적 교류를 도모하고, 베를린 장벽으로 인해 동독이 외부로부터의 고립을 막고, 동독, 소련, 동유럽과의 화해와 평화적인 관계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동방정책의 핵심 내용은 이산가족 상호방문, 통신 및 전화 교류, 우편교류입니다. 여행 제한 조치를 점차 해제하며 쌍방 국경 지역에 통로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1969년 12월 7일,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하여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에 헌화한 후에 빗물이 흐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습니다. 이 장면은 독일의 진지한 과거 반성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사건이었습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내 유대인을 가두고 절멸시키려 했고 또 폴란드를 말살하려고 했었습니다. 독일 민족을 대표해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폴란드인들의 고통과 속죄를 위한 총리가 속죄의 자세로 무릎을 꿇은 것은 세계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헝가리의 뉴스 캐스터는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의 행동에 감동을 받은 폴란드 총리 유제프 치란키에비치는 다음 행선지로 가는 차안에서 브란트를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세기의 사죄’, ‘가장 위대한 사죄’라고 부르는 그의 사죄는 그가 추진한 동방정책과 함께 훗날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70년 3월,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는 동독의 슈토프 서기장과 함께 에어푸르트에서 첫 동서독 정상회담을 가졌고,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에서 동서독 국가 간 정식 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이전까지의 대결 정책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서독의 정책 노선 전환이 서방 진영으로부터 이탈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브란트 이후의 모든 총리가 일관되게 고수했으며, 서독 내부의 일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유지되었습니다. 친 서방정책 없이 동방정책이 있을 수 없고, 동방정책 없이 독일통일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통독의 씨앗을 뿌렸던 브란트는 197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브란트의 리더십은 비전, 탁월한 용기, 투명한 정치철학, 강력한 추진력 등입니다. 특히 그는 평화를 매우 강조했습니다. 심지어 자유 보다 더 평화를 중요시 했습니다. 빌리 브란트는 독일의 성장보다 더 유럽의 성장과 평화에 더 많은 열정을 쏟았습니다. 우리 또한 아시아 평화를 더 우선시 해야 합니다. 브란트는 장벽이 무너진 그 다음날 11월 10일, 베를린 장벽 붕괴 현장을 방문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Jetzt wächst zusammen, was zusammengehört.”(원래 하나였던 것이, 이제 함께 성장한다). 한 사람의 탁월한 리더십이 독일통일을 이루어냈습니다. 비전 성도들 가운데서 제2의 빌리브란트가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통일한국 리더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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