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22.09.04 - 독일 통일의 주역 고르바초프
Authorberlin-visionCount23Date2022/09/04

■부흥칼럼(436)      독일 통일의 주역 고르바초프”         2022.09.04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2022) 전 대통령이 오랜 투병 끝에 8월 30일, 향년 91세로 사망했습니다. 옛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고르바초프는 냉전종식 주역이요, 독일 통일의 주역입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집권한 이래 전제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 정책은 독일 통일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그는 미국과 중. 단거리 미사일 군축 폐기에 합의했고, 동독의 국내 문제에 대한 소련의 발언권을 포기했습니다. 1989년 민주화 시위가 동유럽 공산주의권 국가를 휩쓸 때 과거 이들 국가에 대한 무력 개입을 정당화한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했습니다.

이는 중동부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대변혁을 불러왔습니다. 동방 진영에 속해 있던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동구권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며 자국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5월 2일, 서방진영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한 헝가리 정부는 개혁을 추진했고, 오스트리아방면의 국경선에 설치한 철조망과 감시초소를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동독과 맺은 여행협정을 파기해 버렸습니다. 헝가리의 이런 조치는 동방진영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1945년 이래 최초로 ‘철의 장막’을 걷어내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동독 시민들은 헝가리를 경유하여 오스트리아 국경을 통해 서독으로 탈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동서독 통일을 사실상 용인해 서방에서 냉전 해체의 주역으로 높이 평가받습니다. 1989년 12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지중해 몰타에서 고르바초프는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몰타에서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동안 계속된 냉전의 종식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사실 2+4 조약을 체결할 때 서독은 NATO에, 동독은 바르샤바 조약에 가입되어 있었는데 통일된 후 둘 중 어느 기구의 회원국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서독 총리 헬무트 콜과 외무장관 겐셔는 1990년 7월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와 카우카주스에서 회담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고르바초프는 통일된 독일이 어느 기구에 속할지는 독일이 스스로 결정하는데 동의했습니다.

이 말은 통일되는 순간부터 독일이 자주권을 회복한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이 공로로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독일의 통일과 번연을 이끈 정치 리더십이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서독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쿠르트 키징거,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게르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외무부 장관 한스 디트리히 겐셔 등입니다. 이 외에도 냉전체제를 종식했던 소련 전 대통령 고르바초프는 독일 통일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고르바초프는 1990년 6월에는 미수교 상태에서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미국 뉴욕에서 사상 첫 한·소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이는 한국 북방외교의 최대 성과로 꼽히는 한·소 수교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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