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22.06.05 - 윌리엄 캐리의 선교열정
Authorberlin-visionCount31Date2022/06/12

부흥칼럼(424) 2022.06.05

윌리엄 캐리의 선교 열정

윌리엄 캐리(William Carrey 1761-1834)는 인도에서 활동한 영국 침례교 선교사이며, 개신교 현대선교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1761년 영국 노샘프턴에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환경 속에서 정식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가정이 너무 어려워 10대의 나이에 구두 수선공으로 일했습니다. 그의 나이 19세에 한 기도모임 중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어느 날 주일 설교 시간에 위대한 복음 전도자에 대한 이야기가 캐리의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캐리의 가슴에는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으로 불타올랐습니다. 24살 때 존 라일랜드 목사에게 침례 받고 목회를 시작하였으며, 1793년 개신교 역사상 최초의 해외선교회인 침례교 선교회(BMS)를 설립합니다.

당시 웨슬리와 휫필드가 이끄는 영적 부흥 운동이 전 영국을 휩쓸고 있었을 때였는데 아무도 세계선교에 대해선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캐리는 침례교 목회자 모임에서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과 그것을 현대에 적용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하지만 그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한 원로목사님은 일어나 캐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그만 열 내고 자리에 앉게나. 만약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려고 한다면 자네나 우리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을 걸세. 이것은 선교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모든 목회자들도 캐리의 주장을 현실성 없는 환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캐리 안에 불붙은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과 성령의 불은 더욱 크게 타올랐습니다.

드디어 1793년 32세가 된 윌리암 캐리는 인도 영혼들을 향한 상한 목자의 심정을 안도 인도 선교사로 가고자 결단했습니다. 그러자 그 길을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들이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캐리의 말을 듣고 딱 한 마디 했습니다. “미친 놈! 둘째는 그의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영국 시골에서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넷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아내는 “여보, 인도는 절대로 안돼요. 제발 우리 아이들도 생각해 주세요”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셋째는 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캐리와 같은 휼륭한 목회자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교회 장래를 위해 절대로 목사님을 보내지 않겠다고 나섰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캐리는 가족 모두와 선교 동역자인 토마스와 함께 인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폭풍을 뚫고 5개월 만에 인도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캐리의 눈에 비친 인도에 대한 인상은 가난과 절망의 나라요, 어린아이들을 악어가 가득한 강에 던지는 그런 미신이 가득한 나라였습니다. 그곳에서 캐리는 눈물로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받았고 수천만 명의 크리스천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예배에 참석하는 승리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인도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캐리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캐리를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비전 성도들이여, 캐리처럼 하나님을 향해 위대한 계획을 세우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실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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