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21.10.24 - 존 낙스의 꿈이 이루어지다 | ||||
---|---|---|---|---|---|
Author | berlin-vision | Count | 18 | Date | 2021/10/29 |
부흥칼럼(392) “존 낙스의 꿈이 이루어지다” 2021.10.24 존 낙스(John Knox, 1514-1572)는 1514년 스코틀랜드의 해딩턴에서 태어나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종교개혁자로서의 낙스의 사역의 원동역은 회심이었는데 그의 회심에 영향을 끼쳤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낙스는 24세의 젊은 패트릭 해밀턴이 교회 개혁자였다는 이유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공개적으로 화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또 개혁자 조지 위샤트의 설교에 큰 영향력을 받았습니다. 그 후 요한복음 17장을 통하여 낙스는 “나로 하여금 신앙의 닻을 처음으로 내리게 한 말씀이 곧 이 말씀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회심을 경험한 낙스는 로마 가톨릭과 결별학고 개혁주의로 전향하여 교회 개혁과 부패한 영혼들의 심령을 깨우치는 사역에 헌신하게 됩니다. 존 낙스가 가슴 속에 품은 비전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교회를 세워가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스코틀랜드가 다스려지는 나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낙스는 신약이 말하는 교회로 돌아가고 싶었고, 그의 개혁의 시작은 설교, 오직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전 지역을 순회하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교회법, 미사 등 잘못된 교리에 대해서 비판하였고, 또 공기도서의 사용을 거부하고 성경을 근거로 자신이 작성한 예배서를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성찬식 때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이나 루터파의 공재설을 부인하고 개혁파의 영적 임재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잉글랜드 여왕으로 등극한 ‘피의 메리’가 로마 가톨릭 신앙을 회복하면서 수많은 개신교 목회자들을 체포하여 처형하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낙스는 몇 달 동안 설교를 계속 하다가 1554년 3월 영국 해협을 건너 칼빈이 사역하고 있는 제네바로 피신하였습니다. 몇 년 후 낙스는 자신의 조국 스코틀랜드로 귀국합니다. 그때 낙스는 “오!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나에게 주시옵소서 아니면 죽음을 주시옵소서.”라고 목숨 건 기도를 하였습니다. 에딘버러 세인트 자일스 교회의 목회자로 청빙을 받은 낙스는 교황제도를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하면서 로마교회를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마치 선지자처럼 불과 능력으로 말씀을 전했던 낙스의 설교가 얼마나 강렬하였는지 메리 여왕이 낙스의 설교를 들으면서 떨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그의 설교를 군대보다도 더 무서워했습니다. 불같은 낙스의 설교는 로마 가톨릭화 되어가는 스코틀랜드에 개혁과 부흥의 불을 지폈습니다. 드디어 존 낙스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1561년 12월 5일, 낙스는 장로교회 총회를 개최했습니다. 결국 스코틀랜드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힘을 잃게 되었고 장로교 형태의 스코틀랜드 개혁 교회가 합법적으로 확립되게 되었습니다. 존 낙스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가슴에 품은 꿈과 비전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비전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꿈과 비전 그리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는 용기와 담대함입니다. 또 기도생활입니다. 존 낙스는 기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대를 깨웠던 진리를 위한 하나님의 나팔수였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비전 성도들이 가슴에 품은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
|||||
Previous | 2021.10.17 – 독일통일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 ||||
Next | 2021.10.31 – 종교개혁자들의 신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