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21.10.17 - 독일통일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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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44 | Date | 2021/10/17 |
부흥칼럼(391) “독일 통일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2021.10.17 금년 10월 3일은 독일 통일 31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유혈사태를 거치지 않고 갑작스럽게 무너졌던 것을 보고 독일 통일이 기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는 엄청난 무기들로 무장한 나토군과 바르샤바 조약군이 냉전의 최전방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었고, 약 50만 명의 러시아 군인들은 강력한 전차부대와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독일 국민들은 적어도 20-30년 안에는 양국의 통일을 위한 대화라도 이루어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하지만 1989년 11월 9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장벽은 무너졌고 갑작스럽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독일통일은 두 번의 세계전쟁과 약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이끌어왔던 독일국민에게는 받을 자격 없는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당시 동독의 독재자 에리흐 호네커 (Erich Honnecker)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겨우 며칠전 이렇게 공포하였습니다. “이 장벽은 앞으로 백년간은 사회주의와 함께 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얼마 안 되어 동독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1989년 10월 9일 라이프치히에서 7만 명의 시민들이 평화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이날이 결정적인 날이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Wir sind das Volk”(우리는 국민이다). “Wir sind ein Volk”(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치면서 대규모의 촛불 시위를 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던 동독 주민들은 체제 변화를 외치며 자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10월 16일, 월요시위는 12만 명, 동독 전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1989년 10월 18일,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가 사임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갈망하던 동독 주민들의 시위는 계속 되었습니다. 대규모 시위가 동독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시위 내용은 “핵 군비 확산 방지, 중거리 미사일 동서독 배치 반대 운동, 동독 비밀경찰인 슈타지는 물러가라, 여행의 자유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989년 11월 4일, 동베를린 알렉산더 플라츠에서 약 100만 명의 시민이 자유를 외쳤습니다. 1989년 11월 6일, 새로운 여행 개방 관련 법 개정 초안이 발표되었지만 동독 주민들의 요구에 미치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는 성난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여행 자유화 조치를 발표합니다. 원래 동독 정부는 여행 허가 범위를 확대해 주민 불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 완전한 여행 자유화를 계획하진 않았습니다. 이러한 자유화 조치를 들고 급하게 기자회견을 진행합니다. 공산당 대변인 권터 샤보브스키는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역사적인 말실수를 하고 맙니다. 여행 자유화는 ‘지금 즉시(ab sofort)’ 라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국경을 넘을 수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 수천 명은 동시에 베를린 장벽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곧바로 전 세계로 긴급 속보로 전해지기 시작했고 즉시 동베를린 주민들이 장벽으로 몰려들어 부수었습니다. 현대 세계사의 드라마틱한 순간이 된 것입니다. 장벽을 올라타고 넘어가며 자유를 외치면서 환호하던 시민들은 내친김에 장벽과 분단을 동시에 허물어 버렸습니다. 결국 1989년 11월 9일, 냉전시대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한반도의 남북이 평화통일이 되는 꿈꾸면서 깊은 인내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통일 이전에 남북에 놀라운 부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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