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20.05.24 - 선교의 불꽃, C.T.스터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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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181 | Date | 2020/06/02 |
부흥칼럼(317) “선교의 불꽃, C.T. 스터드” 2020.05.24
1862년 찰스 토마스 스터드(Charles Thomas Studd, 1862~1931)는 삼 형제 중 막내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스터드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의 관심은 스포츠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크로켓’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1879년 영국 캠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수석을 달리는 우수한 학생이었을 뿐 아니라 아주 탁월한 크리켓 선수였습니다. 1882년 겨우 대학 3학년 때, 스터드는 크리켓으로 영국 전체 시합에서 우승하면서 ‘영국의 가장 위대한 크리켓선수’ 라는 격찬을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보장된 출세의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캠퍼스 집회에 참여했다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고자 결단하였습니다.
그는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가겠노라고 선포했습니다. 1885년 2월, 그리스도를 위한 열정 때문에 그는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중국 땅으로 갔습니다. 그는 유산으로 받은 수 십 억의 재산을, 말씀에 순종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스터드 자신은 다른 선교사들처럼 믿음으로만 생활을 유지하며, 7년 동안 800명의 마약중독자들이 새 삶을 살도록 도왔습니다. 중국에서 10여년을 섬긴 후에 그의 육신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1894년 건강의 악화로 중국에 온 지 10년 만에 영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습니다. 이후로부터 6년 동안은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미국과 유럽 전 지역 캠퍼스를 순회하면서 학생들에게 선교 비전을 심는 선교 부흥집회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부흥회를 통해 수 백명의 학생들이 해외 선교사로 자원하게 됐습니다.
1900년에 6년간 인도선교사로 갔다가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그는 다시 아프리카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스터드는 “아프리카 선교 중심부”라는 선교후원회를 만들고 1913년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결정이라며 그를 만류했습니다. 선교지로 가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습니다. “황금을 찾기 위해 도박하는 불신자들도 있는데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도박을 하겠다.” 스터드는 8년 동안 아프리카 중심부에 위치한 벨기에령 콩고강에서 복음사역을 했습니다. 식인종 부족들 가운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브와나 무쿠바(위대한 하얀 추장)라고 부르며 존경하였습니다. 스터드는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항상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931년 7월. 71세를 일기로 스터드는 콩고 아밤비에서 지병인 담석증으로 소천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젊어서는 직업을 걸었고 중국에서는 재산을 걸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목숨을 건, ‘위대한 믿음의 도박사’였습니다. C. T. 스터드는 모든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날 위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 수 없습니다.” 구령의 열정에 불탄 스터드를 포함한 ‘캠브리지 7인’은 지금까지 학생복음운동의 조상이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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