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20.02.16 - 한국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
Authorberlin-visionCount38Date2020/02/23

부흥칼럼(304)        한국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         2020.02.16

주기철 목사님은 1897년 11월 25일, 경남 창원군 웅천면 북부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은 주현성 장로님입니다. 주 목사님은 1921년 1월 10일 웅천읍 교회에서 김익두 목사님의 부흥회 새벽기도회 때 통회하고 성령감동을 체험했으며 그후 목사가 되기를 결심했습니다. 주 목사님은 192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고, 1926년 평양신학교 19회로 졸업하셨고, 그 후 부산초량교회와 마산 문창교회,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목회하셨습니다. 사실 일제는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의식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인들의 혼을 빼 버렸습니다. 3•1운동 때 그토록 민족의 독립을 소리 높이 외쳤던 애국자들도 그 후 일본의 문화정책 술수에 모두 녹아나서 친일로 돌아섰고, 교회도 신사참배 강요에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1938년 장로회 총회는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고 국가의식이라고 성명을 내고, 경찰이 마련한 승용차를 나누어 타고 평양의 일본 신사에 가서 모두 참배를 했습니다. 참으로 하늘도 울고, 땅도 울 수밖에 없는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후 한국교회는 없어지고,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이 되었고 예배 순서에는 찬송가와 함께 천황찬양의 노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반대하셨고, 신사 참배는 하나님 앞에 죄요, 마귀가 하는 일이라고 강하게 외치셨습니다. 결국 감옥에 끌려가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밤마다 물어뜯는 벼룩, 이, 빈대 떼로 인해 살가죽이 뜯겼고, 굶주리고 매맞고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일제의 강압과 회유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결국 여호와와 바알을 동시에 섬긴 우를 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선 목사를 필두로 주기철, 손양원, 손명복, 이인재, 한상동, 박관준 목사님 등 여러 목사님들이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결사항전 하다가 순교 또는 산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 총사령관인 주 목사님은 1944년 4월 21일, 49세의 일기로 평양형무소에서 주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주 목사님은 한국교회사 속에 우뚝 서 계신 영적인 거장입니다. 개혁주의요 말씀의 사람, 기도의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함과 불과 같은 열정으로 주의 교회들을 일으키셨고 초량교회 문창교회 산정현교회의 어진목자이셨습니다. 강단에서는 진리말씀 불같이 설교하셨으며 온몸으로 불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 목사님과 같은 분을 주셨다는 것은 지극히 큰 은혜라고 생각됩니다. 주 목사님은 온몸으로 신앙을 지켰으며, 예수님의 제단에 드린 제물이요 한국교회의 면류관이요, 최후 승리자입니다.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과거 주기철 목사님이 하나님을 거스리는 세상의 권세와 맞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려고 피 흘리던 시대와는 다른 양상입니다. 하지만 종교 다원화와 세속주의와 이성주의, 과학만능주의, 물질주의가 우리의 전통신앙을 위협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육체가 아프되 신앙과 바꾸지 아니하셨고, 죽으면 죽으리라 일사각오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셨던 주기철 목사님의 오직 신앙과 생활 모범이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주 목사님을 본받은 신앙의 씨앗이 이 땅에 화려하게 피어나기를 갈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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