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9.11.10 - 베를린 장벽붕괴 30주년을 맞이하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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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67 | Date | 2019/11/10 |
■부흥칼럼(290) “베를린 장벽붕괴 30주년을 맞이하여” 2019.11.10 1989년 9월 4일,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평화 기도회 이후 처음으로 “월요 시위”로 알려지게 될 시위가 시작 되었고, 1989년 9월 30일, 서독의 한스 젠셔 외교부 장관은 프라하 대사관으로 피신한 동독 주민들에게 서독으로 입국이 가능하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 후 체코에서 서독으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1989년 10월 2일, 라이프치히에서 약 1만 여명이 월요 시위에 참여했는데, 그때 동독 경찰의 무력 진압이 있었습니다. 1989년 10월 7일, 동독의 4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었지만, 동 베를린에서 몇 천 명의 시위대가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위대는 무력으로 진압되었고 그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1989년 10월 18일,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가 사임하였습니다. 1989년 11월 4일, 알렉산더 플라츠에서 정부가 주관하지 않은 동독에서 가장 큰 정치 집회가 열렸고 여러 연설자 중에 야당 정치인 뿐 만 아니라 여당 지도부도 참석하였습니다. 1989년 11월 6일, 새로운 여행 개방 관련 법 개정 초안이 발표되었습니다. 동독 주민들의 요구에 미치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라이프치히에서는 이에 대한 반응으로 대형 시위가 있었습니다. 1989년 11월 9일, 귄터 샤보스키(Günter Schabowski)가 새로운 여행자유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실수로 “지금부터 당장 유효하다” 라고 답변했습니다. 곧바로 전 세계로 긴급 속보로 전해지기 시작했고 즉시 동베를린 주민들이 장벽으로 몰려들어 부수었습니다. 현대 세계사의 드라마틱한 순간이 된 것입니다. 1990년 10월 3일, 공식적으로 독일의 통일이 공포되었습니다. 1961년 콘크리트로 만든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이 되는 2019년 11월 9일, 역사적인 날! 독일 사회는 11월 4일 월요일부터 10일 주일까지 베를린 장벽과 관련된 주요 장소 7곳에서 일주일 동안 열렸습니다. 행사의 초점은 혐오 배제와 화합, 자유의 가치에 맞춰져 있습니다. 알렉산더 플라츠, 겟세마네교회, 브란덴부르크 문, 슐로스플라츠, 이스트사이드갤러리, 슈타지 센터, 쿠담 등에서는 해당 명소의 역사를 알리는 야외 전시회, 강연, 공개 토론회, 관련자들 증언, 연극, 영화, 드라마, 기념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들 총 200여개가 있었습니다. 탈주 땅굴도 첫 공개했습니다. 11월 9일,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열린 기념축제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자유 막는 장벽이 너무 높고 두껍더라도 결국 뚫는다는 교훈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멀티미디어를 통해 독일이 어떻게 자유를 누리게 되었는지의 30년 전의 역사, 용기, 자유 등을 음악, 연극, 조명 퍼포먼스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내내 45년간 분단 현실을 딛고 동서독 통일의 문을 열었던 베를린장벽 붕괴 장소 주요 7곳을 다니면서 사진 찍고, 책을 사고, 자료 모으고, 슈타지 박물관도 자세하게 보았습니다. 특히 11월 9일, 저녁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열린 기념축제에 참여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제 가슴이 뭉클했고 흥분되었습니다.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이 되면 우리도 평양에서, 서울에서 열리게 된 기념축제를 꿈꾸어 보았습니다.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선이 속히 무너질 날을 기대하면서 통일의 새 날을 위해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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