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9.10.13 - 순교자 얀후스의 신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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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49 | Date | 2019/10/13 |
■부흥칼럼(286) “순교자 얀후스의 신앙” 2019.10.13 저는 지난주에 아내와 함께 주님 때문에 화형 당했던 체코의 종교개혁자 후스의 유적지를 찾아 연구하고자 독일 남부 콘스탄츠를 방문했습니다. 콘스탄츠에서 후스가 갇힌 감옥과 1415년 7월 6일 콘스탄츠 공의회가 콘스탄츠 슈테반 성당, 후스 박물관, 후스의 무덤을 둘러보았습니다. 특히 후스의 무덤을 보면서 가슴 뭉클하였습니다.
체코 프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1372~1415)는 프라하 베들레헴 채플에서 1402-1412년 까지 설교하였습니다. 후스는 교황권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 성적타락, 면죄부 그리고 성직매매금지를 비판했습니다. 또한 그는 교회 재산권 박탈을 강조했으며, 이종성찬을 실행했으며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면서 종교개혁의 사상을 전파하였습니다. 후스는 교회개혁을 외치다가 콘스탄츠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고 화형당했습니다. 체코 프라하 광장에 세워진 얀 후스 동상에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라”는 그의 명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걸어나오는 듯한 동상에 새겨진 후수의 정신입니다.
“강인했던 후스는 콘스탄츠의 화염 속에서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깨어났다. 그의 육체는 타버렸지만 그의 정신은 살아남았다. 그의 명성은 체코 역사의 정신과 생명이 되었다. 후스의 순교로 인류는 진리로 향하는 길과 인식의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다. 후스 봉기는 최초의 위대한 혁명이었고, 그 안에서 인류는 중세의 종교적 압제의 멍에를 벗어버릴 수 있었다. 이는 본질적이고 정신적인 선을 위한 작은 민족의 거대한 투쟁이었다. 새로운 삶으로 나가는 힘 있는 첫걸음으로, 서방의 이 모든 근대적 진보는 여기에 빚을 지게된 것이다. 작은 체코 민족은 이러한 진보를 홀로 이루어냈지만, 후에 실패의 뿌리도 함께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은 거대한 중세 유럽 가톨릭 세력과의 싸움에서 힘을 다 소진하고, 200년 후 결국 적들의 음모에 의해 1620년 마지막 공격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체코는 후스가 순교했던 체코 땅입니다. 당시에 프라하는 다른 모든 지역처럼 90%가 개혁교도였습니다. 프라하는 체코 종교개혁의 선두 도시였고, 로마가톨릭은 주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체코는 유럽에서 무신론이 가장 강한 나라로 변해버렸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주님을 위해 피를 흘렸던 이 땅이 지금은 무신론의 땅, 선교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체코는 동방정교회와 가깝습니다. 가톨릭 36%, 개신교 2%입니다. 체코 복음화가 긴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후스는 15세기 체코의 위대한 종교개혁자요 신학자요 화형당한 순교자입니다. 그는 유럽종교개혁의 불씨요, 유럽종교개혁의 새벽별입니다. 후스는 일생동안 진리를 전파했으며,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순교당하기 전까지도 진리 위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 후스는 바로 이 진리 때문에 화형당한 순교자입니다. 우리 역시 후스처럼 진리위에 굳게 서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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