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19.10.06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Authorberlin-visionCount132Date2019/10/07

■부흥칼럼(28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019.10.06

1563년 작성된 영국 성공회의 [39개조 신앙고백]이 한동안 영국 내 개신교인들을 만족시켰지만,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다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청교도들은 39개 신조로는 종교개혁의 신학을 전체적으로 지키기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간소화 예배 의식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의 요구를 무시한 찰스 1세는 재임 기간 동안 내내 영국 의회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이러한 왕의 행동은 전쟁을 촉발시켰습니다. 청교도 장군 올리버 크롬웰은 국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청교도 공화국을 수립하였습니다. 1643년, 영국의회는 영국 성공회의 예전과 신앙고백을 수정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총회를 소집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대표들은 평신도 10명의 군주들과 20명의 하원의원, 스코틀랜드에서 온 위원 6명과 121명의 성직자들이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교리, 예배, 권징에 대한 표준 문서를 마련하기 위해서 1643년 7월 1일부터 1649년 2월 22일까지 약 5년 6개월에 걸쳐 1,163회 이상의 정규 모임을 가졌습니다. 회의는 토요일과 주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내지 2시까지 열렸으며, 오후에는 위원회 별로 회합을 가졌습니다. 1646년 12월, 웨스트민스터 의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을 완성했으며, 교인들에게 교리를 쉽게 가르칠 수 있도록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을 개발했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의회는 이 세 가지 문서를 주저 없이 승인했습니다.

영국 국교회의 교리 표준을 세우기 위해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기독교 신학을 전반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내용은 [성경,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정, 창조, 섭리, 인간의 타락, 죄, 형벌, 하나님의 언약, 중보자 그리스도, 자유 의지, 칭의, 양자됨, 성화, 선행, 성도의 견인, 은혜와 구원의 확신,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예배와 안식일, 결혼과 이혼, 교회, 성례, 세례, 성찬, 교회의 권징, 최후 심판] 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개혁파 신앙고백으로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인 존 녹스의 신앙고백과 제네바 신앙고백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전체적으로는 칼빈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적인 장로교회의 표준적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미국 장로교회의 뿌리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의 장로교회에 신학적으로 가장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장로교와 청교도들 비롯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표준 지침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핵심 신조를 교리서 혹은 신앙고백(confessions)으로 요약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벨기에 신앙고백, 제1.2차 스위스 신앙고백] 등의 주요 신앙고백은 대다수가 종교개혁 시대에 작성 됐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좀 더 깊이 탐구하는 신앙고백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작성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신앙고백서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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