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9.08.25 -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 ||||
---|---|---|---|---|---|
Author | berlin-vision | Count | 69 | Date | 2019/08/25 |
■부흥칼럼(279)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2019.08.25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1832-1905)는 영국 요크셔의 반즐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감리교 목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중국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 중에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신자로서 1807년 광저우에서 상인들을 위해 통역과 설교하며 선교사역을 행했던 로버트 모리슨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부모는 중국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아들을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테일러에게도 중국을 향한 열정이 있었지만 십대의 반항으로 식어져버렸습니다. 다행히 소책자를 읽으며 복음의 메시지에 반응했고, 중국을 향한 비전이 회복되었습니다. 1854년 22살의 테일러는 영국에서 중국 상하이까지의 긴 항해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중국에 도착한 테일러는 많은 선교사들이 호화로운 서양인 지역에서 중국인들과 아무런 접촉 없이 귀족처럼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중국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중국인처럼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먼저 그는 중국인과 똑같은 옷차림을 했고 습관까지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안전한 해안 도시보다는 내륙으로 들어가 마을을 다니며 성경을 나눠 주었습니다. 1858년 테일러는 중국을 향해 열정을 가진 선교사이자 교사, 마리아 다이어와 결혼했습니다. 1860년경, 테일러 선교사 부부는 상하이와 산터우, 닝포에서 사역했고, 성경을 번역하고 병원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부부는 질병으로 인해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테일러는 중국 선교의 필요성을 알리는 책을 출간했고, 중국의 모든 성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CIM)’를 세웠습니다. 그는 오직 기도하고 필요를 채워주실 하나님만 신뢰하며 절대 재정적인 도움을 청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테일러는 ‘매달 1백만 명이 하나님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다’고 교회에 알리며 선교사를 모집했는데 대성공이었습니다. 결국 테일러는 중국 18개 성에 보낼 선교사를 모두 찾아 파송할 수 있었습니다. 1866년 테일러와 마리아, 그리고 선교사 16명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중국 내지를 복음화하겠다는 각오로 런던을 출발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대가는 엄청났는데 부인 마리아가 3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그는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1905년 허드슨이 사망할 무렵, 중국에는 205개의 선교 본부와 849명의 선교사들이 있었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중국인들도 약 12만 5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테일러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선교사 모집이었을 것입니다. 중국 복음화의 문을 연 테일러는 중국 내륙 선교의 아버지이며, 중국내지선교회는 중국 최대의 선교단체가 되었습니다. 수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 땅에서 초교파적, 국제적 선교회를 창설하고 이를 인도하는 일에 허드슨 만큼 뛰어난 사람은 또다시 없을 것입니다. 그는 믿음을 생활로 보여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의 선교사 생활 중에도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하루도 게을리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의 믿음과 말씀연구 그리고 기도생활이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
|||||
Previous | 2019.08.18 –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바흐 음악 | ||||
Next | 2019.09.01 – 기도의 어머니 모니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