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19.07.21 - 프랑스 위그노들의 신앙
Authorberlin-visionCount118Date2019/07/22

■부흥칼럼(274)        프랑스 위그노들의 신앙”             2019.07.21

프랑스 신교도(프로테스탄트)를 통틀어 일컫는 1세기와 17세기의 위그노들은 굳센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수의 가톨릭 집단은 정부와 함께 소수의 위그노들 공격을 조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개혁 어간부터 약 500년 동안 수많은 박해와 피난을 겪었습니다. 몇 년 전 유럽목회자세미나를 마친 후 목사님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위그노 유적지를 방문하였습니다.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작은 마을 바시(Wassy)라는 마을을 찾았습니다. 그곳은 1562년 3월 1일, 리즈 공을 수행한 무장 군인들이 한 곡식 창고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약 250여명의 위그노들을 무참히 학살을 하였던 곳입니다. 이것이 바시 대학살입니다. 이것은 근대 역사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박해 가운데 하나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학살 당시 바시 교인들은 시편 88편을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가혹한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을 불렀던 위그노의 신앙에 대해 나의 신앙이 매우 초라함을 느꼈습니다. 권현익 선교사님의 바시 대학살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참석한 목회자들과 사모님들은 다함께 찬양을 불렀습니다. “최후 승리를 얻기 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 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순교자들인 위그노들의 신앙을 본받아 우리들도 매일 험한 십자가 붙들면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다함께 통성기도를 하였습니다. 위그노 학살 이야기는 박해의 흉악함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위그노들처럼 소수로 살아갈 날이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그노의 학살 이야기를 들은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흐르는 눈물로 교회를 가득 채웠습니다. 바시 박물관은 한 순간에 은혜로운 바시(위그노) 교회로 변해 버렸습니다. 당시의 바시 교회는 현재 기독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 내부에는 깔뱅의 사진과 성경 및 각종 자료와 종교개혁자들에 관한 자료 및 종교개혁 과정 그림 등이 있으며, 바시 대학살과 관련된 자료들과 대형 위그노의 십자가를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학살 당시 바시 교회 주일 예배에는 약 1,500여명이 참석하였지만 현재는 더 넓은 지역을 합하여도 약 50여명 정도 모인다고 합니다. 신앙이 숫자는 아니지만 오늘날 그 후손들은 믿음의 선조들인 바시 순교자들의 영성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 왕성했던 교회가 예배의 자유가 주어진 지금은 신앙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바시 순교자들의 억울한 절규가 강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개혁자들의 순교가 있었기에 오늘의 개신교가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바시 대학살, 역사는 잊지 않습니다. 우리 비전가족들은 유럽에 살면서 프랑스 위그노들이 박해받았던 그 신앙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켰던 위그노의 영성에 큰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슬람 600만 명이 가득한 프랑스가 복음화 되도록 기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프랑스 부흥을 갈망하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프랑스에 놀라운 부흥을 주옵소서! 위그노의 영성이 리바이벌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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