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19.07.14 - '복음박사' 위클리프의 회심
Authorberlin-visionCount68Date2019/07/16

■부흥칼럼(273)       “’복음 박사’ 위클리프의 회심”         2019.07.14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고 불리는 존 위클리프 (John Wycliffe, 약 1324-1384)는 요크셔(Yorkshire) 북쪽의 시골 마을 리치몬드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가문은 독실한 로마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옥스퍼드 발리올(Balliol) 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은 후 위클리프는 철두철미한 성경 중심적 신학자로서뛰어난 명성을 날리며 가장 유능한 교수로 존경 받았습니다. 위클리프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과 법, 천문학 등 학문을 열심히 하였으며, 라틴어에 탁월했습니다.

또한 그는 성경을 사랑하고 연구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열성 있는 성경 연구로 그는 나중에 동료 학생들로부터 ‘복음박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접한 위클리프 마음속에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점차적으로 깊고 명쾌하게 비추었습니다. 그는 철학이나 교회의 가르침에서 얻지 못했던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즉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유일한 중보자요 구원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성경만을 모든 믿음과 교회생활의 실천 원리로 삼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흠뻑 마음을 적시어 심령에 큰 변화를 받은 위클리프는 1348년 19세에 회심하게 됩니다.

회심 이후 위클리프는 주님을 모르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전하기로 결심하고 전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의 회심으로 인한 변화는 수많은 영혼들이 말씀을 이해하도록 사역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장차 종교개혁의 길을 열어 놓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위클리프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스스로 성경을 읽을 권리가 있으며 평신도들도 얼마든지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자들 속에 풍성히 거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는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 성경 번역에 대한 비전이 타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성경번역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클리프는 목숨 걸고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이 사역은 위클리프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다 불태워 번역한 성경은 복음의 빛을 가렸던 어두운 중세 교회에 진리의 촛불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온 생애를 통하여 날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담대히 진리를 전파했던 위클리프는 1384년 12월 31일 루터워스(Lutterworth) 목사관에서 뇌일혈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루터워스 길 가에 있는 위클리프의 기념비에는 “종교개혁의 새벽별, 영어로 첫 번째 번역한 사람. 1324-1384, 시편 119:31, 요한복음 5:39, 히브리서 6:12, 요한계시록 2:10”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정말 위클리프는 칠흑 같은 어두운 중세 시대에 종교개혁의 새벽별이요, 부흥의 새벽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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