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9.06.30 - 안네의 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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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80 | Date | 2019/07/07 |
■부흥칼럼(271) “안네의 일기” 2019.06.30 독일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Anne Frank, 1929.06.12~1945.03.12)는 1929년 6월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4살 되던 해 독일에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게 되고 얼마 후 유대인들에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1933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자, 아돌프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 정권 초기에 독일의 사업가였던 안네 프랑크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1889~1980)는 살아남기 위해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1941년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하자, 안네 프랑크는 공립학교에서 유대인 학교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1942년 7월 9일 강제노동수용소로 가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프랑크의 가족들은 독일군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아버지의 식료품 공장의 창고와 뒷방 사무실에 다른 4명의 유대인과 함께 숨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안네는 이 무렵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일기장을 ‘키티’라고 부르며 친구에게 말하듯이 써내려간 독특한 양식이 특징입니다. 1942년 6월 12일부터 1944년 8월 1일까지 약 2년간 은신 생활을 하면서 썼던 내용이 “안네의 일기”입니다. 안네의 일기 배경에는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Holocaust, 유대인대학살)를 통해 유대인을 전멸 시키고자 했던 역사적인 사건이 깔려 있습니다. 나치 독일은 6백만명 정도의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1944년 8월 4일, 네덜란드인들의 정보를 받은 게슈타포(Gestapo,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가 안네 일행이 살던 곳을 발각했습니다. 안네는 은신처가 발각되기 사흘 전까지 일기를 썼습니다. 결국 그 일행은 모두 붙잡혔습니다. 안네 프랑크의 가족들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옮겨졌는데 프랑크의 어머니는 1945년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프랑크와 그의 언니는 베스테르부르크 수용소를 거쳐 독일 하노버 근처 베르겐베르젠 강제수용소로 옮겨졌습니다. 이 수용소에서 안네는 1945년 3월초 16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러시아 군대가 아우슈비츠를 해방시켰을 때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프랑크의 가족들이 떠난 뒤, 친구들은 게슈타포가 가져가지 않은 것들을 보관하고 있다가 후에 오토 프랑크에게 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있었으며, 1947년 오토 프랑크는 이것을 〈어린 소녀의 일기, Het Achterhuis〉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그녀는 소설가입니다. 조숙한 문체와 통찰력을 보여주는 이 일기는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소녀로서의 감성이 성숙해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기에 안네 프랑크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 착하다는 것을 믿는다”라고 썼습니다. 이 일기는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으며 암스테르담의 프린젠크라흐트 운하 가까이에 있는 프랑크 가족의 은신처는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안네의 일기처럼 비전 가족들도 베를린에서 삶을 매일 일기로 남기는 작업을 하면 좋겠습니다. 하루 하루 살면서 느꼈던 점,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 하나님의 은혜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과 비전들, 시대의 표적들, 순모임에서 나누었던 아름다운 대화들 말입니다. 부흥일기가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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