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9.05.19 - 붓으로 진리를 전한 렘브란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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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78 | Date | 2019/05/22 |
■부흥칼럼(265) “붓으로 진리를 전한 렘브란트” 2019.05.19 렘브란트 하르멘스존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년 10월 4일)은 1606년 네덜란드의 레이던에서 신앙심이 깊은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가 학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화가로서의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는 화가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대학을 자퇴했습니다. 렘브란트는 기존의 화가들 밑에 들어가 성경 이야기를 비롯해 그리스 로마 역사와 신화를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독자적으로 화풍을 발전시켰는데 아주 독특했습니다. 당시 가톨릭 화가들은 성자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고, 개신교 화가들은 성경의 장면만을 묘사하는 종교화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그림을 통해 신앙심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인물의 외면보다는 내면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화려하고 거룩한 성화들과 달리 성경 속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했습니다. 즉 상처 입고 죄 많은 인간, 그래서 정말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예술적 혼은 더욱 빛을 발해 ‘아브라함과 이삭’, ‘간음한 여인과 예수님’, ‘갈릴리 호수의 폭풍’, ‘돌판을 깨뜨리는 모세’, ‘돌아온 탕자’, 등 역작들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1662년 ‘돌아온 탕자’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예술 작품으로서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또한 렘브란트는 그의 그림 속에 자신의 얼굴을 넣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즉 자기 자신을 모뎀을 삼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죄를 묘사한 ‘십자가에 달리심’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 중 한 명으로 등장시켰으며, ‘돌아온 탕자’에서는 탕자로 자신을 등장시켰습니다. 이는 화가 자신도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632년 렘브란트는 ‘해부학 강의’라는 그림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의 인생에도 어두움이 찾아왔습니다. 1642년에 발표한 ‘야경’(The Night Watch)이 세간의 혹평을 받으면서 화가로서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이 작품이 혹평을 받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어둠 속에 배치했기 때문인데 당시에는 이러한 그의 예술적 도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은 그의 독자적인 화풍으로 네덜란드의 보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 광장에는 렘브란트 동상과 그의 작품 ‘야경’ 조형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꾸준히 종교화를 그렸습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은 인기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림 역시 가난을 자초하면서 그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1658년 그는 마침내 파산선고를 한 뒤 집과 작품들을 팔고 빈민촌으로 쫓겨 갔습니다. 1663년에는 두 번째 부인이 세상을 떠났고, 1668년에는 아들 타투스까지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난과 외로움이라는 이중의 고난 속에서 힘겹게 사투하던 렘브란트는 1669년 10월 4일, 암스테르담의 빈민촌에서 쓸쓸히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그는 지독한 고난 중에도 욥과 같이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그림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신앙고백이 담겼기에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가장 위대한 개신교 화가로, 신앙과 예술을 조화시킨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는 ‘빛의 화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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