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18.07.22 - 모라비안들의 선교열정
Authorberlin-visionCount150Date2018/07/23

■부흥칼럼(223)        모라비안들의 선교열정”             2018.07.22

15세기 체코의 위대한 종교개혁자 얀 후스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했으며 성경의 권위를 교회 내에서 학립시켜 나갔습니다. 결국 후스는 콘스탄츠 공의회 결정에 의해 1415년 7월 6일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는 유럽종교개혁의 불씨요, 새벽별입니다. 당시 얀 후스를 추종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라비안 교도들입니다. 과거 체코 사람들은 동부 모라비아(Moravia)와 서부와 중부 보헤미아(Bohemia)로 크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특히 모라비안들은 전통주의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무리였으며, 오히려 신앙의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체코 산맥을 넘어 독일 동쪽 헤른후트를 찾았습니다. 독일 동쪽 끝자락에 있는 헤른후트는 체코 국경 산맥을 너머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1722년, 이곳은 근대 교회사에 한 획을 그은 모라비안 교도들이 태어난 현장입니다. 당시 진젠도르프 백작은 망명한 모라비안 교도들을 환영하며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이곳에서 정착하여 신앙생활을 하도록 땅을 내 주었습니다. 그들은 진젠도르프와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모라비안 교회에서 약간 언덕으로 올라가면 후그버그 기도탑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멀리 체코, 폴란드가 다 보입니다. 그들은 이곳 둥근 탑에 올라가서 조국과 신앙 때문에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독일사람들은 생명력을 잃어가는 독일 교회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무려 100년간이나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기도에 열심이었고 온 몸을 불살랐다. 이런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더듬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15년 만에 모리비안 교회는 첫 번째로 “웨스트인디스”로 2명의 청년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그 청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노에라도 될 수 있다”라는 각오을 하면서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또한 모라비아의 형제단 사람들을 체코에서부터 독일 헤룬후트까지 인도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크리스티안 다비드(Christian David, 1692-1751) 라는 인물입니다. 모라비아의 형제단 사람들은 1717년부터 크리스티안 다비드의 지도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비드는 1733년 그린란드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모라비안 교회는 계속하여 카리브해 전역, 터키, 서아프리카, 남아프리카, 북미에 선교사들을 파송했습니다. 그들의 선교 열정이 감동을 주는 대목입니다. 모라비안 교도들과 진젠도르프의 중보기도와 뜨거운 선교의 가슴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현대선교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이나 경건주의자들이 없었다면 감리교와 현대 교회사는 크게 변했을 것이고, 세계 선교도 많이 뒤처졌을 것입니다. 헤룬후트는 기도의 땅이요, 경건의 땅이요, 말씀의 땅이요, 선교의 땅입니다. 그 선교사들에게 헤룬후트 별을 달아 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별이요, 생명의 별이요, 축복의 별입니다. 열심히 전도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별들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비전가족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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