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8.05.13 - 진젠도르프의 영향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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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165 | Date | 2018/05/14 |
■부흥칼럼(216) ”진젠도르프의 영향력” 2018.05.13 후기 독일 경건주의를 리드했던 진젠도르프(Graf von Zinzendorf, 1700-1760)는 독일 경건주의 역사에서 아른트와 슈페너, 프랑케에 이어 네 번째로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는 작센 지방의 수도 드레스덴(Dresden)의 경건주의를 신봉하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들은 슈페너와 친밀한 사이였고, 경건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집안의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외할머니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재혼을 했기 때문에, 1704년 이후 외할머니 게르스도르프 손에 양육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외할머니의 경건주의적인 삶을 통하여 신앙적 강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진젠도르프는 프랑케가 세운 일반 김나지움 교육과정인 라티나라는 기숙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거주하며 프랑케와 같이 식사와 공부를 하면서 그는 직접 프랑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루터파 출신인 진젠도르프는 비텐베르크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는 법학 외에도 성경연구와 경건서적 및 신학 서적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루터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그는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로 연구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혀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개혁교회 및 가톨릭교회 지도자들과 교제 하였으며, 루터교 정통주의와 할레 대학의 경건주의를 조화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진젠도르프는 1720년에 회심하였습니다. 그 후 1721년부터 모라비안 형제회를 조직하고, 경건주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습니다. 그의 소원은 교회 사역뿐만 아니라 선교사역에 있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과 함께 세계 선교의 지평을 열어가면서 전 세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모라비안 형제들의 흔적이 가득한 헤른후트(Herrnhut)에는 진젠도르프 백작이 거하던 성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젠젠도르프는 가난하고 연약한 모라비안 교도들과 말씀을 나누다가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당시 경건주의 부흥의 현장이었습니다. 1721년 진젤도르프 성 현관 왼쪽 문에 적힌 문장은 “Hier übernachten wir als Gäste, drum ist dies Haus nicht schön und feste.” 우리는 여기에 나그네로 머물기 때문에 이 집이 아름답지도 견고하지도 않다. 오른쪽 문에 적힌 문장은 “So recht, wir haben noch ein Haus im Himmel, das sieht anders aus.” 실제로 우리는 하늘에 있는 진정한 집이 있으니, 어찌 이것과 비교할 수 있으랴(고후 5:1-2절 축약). 그들은 나그네로 이 땅을 살고 있으며 하늘에 진정한 소망이 있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이들의 소망은 영국 17세기 청교도들의 신앙고백과 다르지 않습니다. 마치 청교도들이 영국 피의 여왕 메리를 피해 불모지와 같던 미국 신대륙을 향해 떠나게 한 동력이었던 것처럼, 이러한 신앙고백이 정든 조국 체코를 떠나 신앙의 자유를 찾아 독일 땅으로 건너온 모라비안들을 움직이던 유일한 동력이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과 청교도들에게 실제는 주님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었으며, 현재는 꿈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주님이 소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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