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8.04.01 - 헨델의 메시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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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106 | Date | 2018/04/01 |
■부흥칼럼(210) ”헨델의 메시아” 2018.04.01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은 1685년 2월 23일 독일 할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궁정 외과 의사였으며, 어머니는 루터교 목사의 딸이었습니다. 헨델은 아버지가 음악 공부를 못하게 막자 밤에 다락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클라비코드(피아노의 전신)를 연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헨델은 7세가 되던 해 바이센펠스 궁정에서 오르간을 연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때 그의 음악을 들은 바이센펠스 공작은 크게 감동을 받고, 헨델의 아버지에게 음악공부를 시키라고 권유했습니다. 그의 부친은 헨델이 음악가가 되는 것 보다는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이며 작곡가인 차하우(F.W. Zachow)에게 보내어 음악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 후 베를린 궁정에서 헨델에게 좀 더 수준 높은 음악 교육을 받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해 왔습니다. 헨델의 부친은 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아들의 뜻을 꺽을 수는 없었습니다. 헨델은 1년 동안 법률을 공부하다 중간에 학업을 포기했습니다.
뛰어난 음악성을 보였던 헨델은 왕을 위해 궁중 작가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19세 때 헨델은 궁정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였고, 하노버 궁정악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이탈리아어로 오페라를 쓰기 시작하여 여러 편의 오페라를 썼습니다. 그 후 헨델은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아 영국으로 건너가 정착합니다. 이 무렵부터 이탈리아 오페라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오페라의 시대가 저물어 갔습니다. 헨델은 오페라의 쇠퇴에 낙담하지 않고 오페라에서 오라토리오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런던에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여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헨델은 왕의 왕이 되신 주님을 위해 불후의 명곡 “메시아”를 작곡하여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메시아”는 복음서와 이사야서, 시편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예언과 탄생, 수난과 속죄,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담았습니다. “메시아”의 한 부분이 된 찬송가 ‘내 주는 살아계시고’는 18세기 영국부흥의 주역인 존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가 가사를 붙였습니다. 이 찬송가가 포함된 “메시아”는 마지막이 ‘할렐루야’ 합창으로 끝납니다.
1743년 런던에서 메시아가 연주될 때였습니다. 영국 왕 죠오지 3세가 “할렐루야”가 연주되는 부분에 이르러 너무 감동한 나머지 자리를 차고 일어나 모자를 벗어들고 서서 곡이 끝날 때까지 않지 않았습니다. 왕의 그런 모습을 보고 다른 청중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것이 관습이 되어 오늘날도 ‘할렐루야’가 연주되는 부분에서는 청중의 기립이 관례로 되어 있습니다. 독일의 한 경건주의파 집안에서 성장했던 헨델은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들으면서 깊은 신앙적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음악의 천재라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음악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바흐나 헨델의 음악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였습니다. 비전가족들의 삶 속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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