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부흥칼럼

Title2017.10.08 -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만찬 논쟁
Authorberlin-visionCount522Date2017/10/11

부흥칼럼(185) 2017. 10. 08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만찬 논쟁

16세기 마틴 루터 종교개혁 당시에 독일과 스위스 지역의 프로테스탄트들의 연합은 매우 긴박한 요구였습니다. 반교황적 정서를 지닌 헤센의 제후 필립(Philipp von Hessen, 1504-1567)은 개신교를 지지했던 가장 중요한 영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필립은 두 사람의 상이한 견해차를 해소하고 하나의 연합을 이루어 보기 위해 1529년 10월 1-3일, 독일 마부르크(Marburg)에서 회담을 개최했습니다. 마부르크 회담에 초청받은 양측의 인사들은 독일 쪽에서는 루터와 멜란히톤이, 스위스 쪽에서는 츠빙글리와 부처가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두 개혁자 루터와 츠빙글리는 이신칭의, 성경의 권위, 만인 제사장, 오직 예수 등 14개조의 교리 항목에 대해서는 모두 합의했지만 단 15번째 항목인 성찬론에 대한 견해 차이는 컸습니다. 물론 성찬에 있어서 루터와 츠빙글리 모두 로마 가톨릭교회의 화체설(transubstatiation)이 큰 오류임을 확신하면서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께서 실재로 임재 하신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의 견해 차이가 크게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3일간 대화와 토론을 전개했으나 좀처럼 견해차를 좁힐 수 없었습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성찬상의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체적 임재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어디에나 계시는 그리스도의 편재성에 근거하여 실재론적 견지에서 자신의 실재 임재의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이 그 떡에 공존한다는 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믿었습니다. 반면에 주의 만찬에 대한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의 견해는 루터와 달리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츠빙글리는 성찬의 떡은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한 회상이며, 갈보리에서 단번에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즉 그는 상징설을 주장한 것입니다. 두 사람의 주장은 ‘공재’ 와 ‘상징’의 대립으로 축약됩니다. 이들 간의 상이한 견해 때문에 루터와 츠빙글리 양측은 결국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루터를 중심으로 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루터파(Lutheran)를 형성하게 되었고, 츠빙글리와 칼빈을 중심으로 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개혁파(Reformed)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루터파와 개혁파들의 성만찬에 대한 견해가 나누어진 것입니다. 사실상 이들 모두는 패배자였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개신교회는 두 가지 전통, 즉 루터주의와 칼빈주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상 루터파와 개혁파 교회들 사이의 분열은 큰 아픔입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성찬 때문에 서로 경직되어 버렸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사실입니. 교회 분쟁은 추태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의 책 “청교도”에서 “루터파와 개혁파 사이의 분쟁이 로마 가톨릭의 모든 천둥 벼락이 합세한 것보다 더 큰 해를 참 종교에 끼쳤다”고 주장했습니다. 개신교가 지난 수 세기동안 분열된 채 남아 있게 된 일은 슬픈 일입니다. 분열은 엄청난 죄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진리 안에서 서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 연합을 위한 불타는 열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힘써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 되는 일에 힘쓸 때 교회 부흥은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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