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7.09.03 - 마틴 부처의 교회연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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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214 | Date | 2017/09/05 |
■부흥칼럼(180) ”마틴 부처의 교회연합” 2017.09.03 마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는 1491년 11월 11일 신성로마제국의 자유도시인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 지역인 알자스 지방 쉴레트슈타트에서 태어났습니다. 1507년그는 여름 도미니칸 수도원에 들어가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글들을 통하여 인문주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1518년 4월, 루터와 그의 동료들이 아우구스티누스파 수도원에서 열띤 논쟁이 있었을 때, 이 신학논쟁에 참석한 부처는 루터를 만납니다. 부처는 루터의 주장과 신학에 많은 부분 공감하고 동의하였으며 얼마 후 자신도 루터파라고 스스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는 루터의 갈라디아서 주석을 읽으면서 “순수한 교리가 담긴 보화”라고 감동하였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는 1529년 2월 20일에 스트라스부르에서 로마가톨릭 미사를 폐지하였으며, 1530년 1월에는 성상과 측면 제단을 제거하였습니다. 이로써 마틴 부처는 종교개혁에 완전히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는 1524년-1531년 까지 성 아우렐리아 교회(Saint Aurelia)에서 목회하였습니다. 또한 마틴 부처는 1531년-1540년 까지 성 토마스 교회(Saint Thomas)에서 목회하였으며, 교회 벽안에 부처의 기념비가 붙여 있습니다. 부처는 1551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신학교수로서 그의 사역을 마감하였습니다. 그가 죽은 지 수년이 지난 후 메리 여왕 치하에서 그의 시체를 파내 형틀에 매어 화형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다시 그의 무덤이 세워지고 그 명예가 회복되었습니다.
독일 출신의 스트라스부르크 종교개혁가 마틴 부처는 루터의 중요한 제자이면서 칼빈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16세기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부처는 종교개혁 시대에 개혁파 신학을 가장 발전시켰고 많은 저술들을 출판했습니다. 그의 활동도 당시 종교개혁에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부서는 참된 목회자였습니다. 그의 온건함과 화합적인 자세는 목회에서도 잘 나타났는데, 그는 16세기 목회학 분야에서 가장 휼륭한 저서로 알려진 “참된 목회”(True Pastoral Care)를 저술하였습니다. 부서는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후대의 청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531년 츠빙글리의 죽음 이후 마틴 부처가 스위스와 독일 남부 지역의 중심적인 종교개혁자로 부상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존 칼빈과 더 가까이 지내면서 개혁교회 종교개혁가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츠빙글리의 개혁사상을 이어 받아 자신의 색채를 가미하여 칼빈에게 전해준 개혁파의 선구적인 신학자입니다. 부서는 평생 동안 루터파와 개혁파 등의 연합을 위해서 대단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더 나아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사이의 화해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존 칼빈에게 대단한 영향을 미쳤고, 많은 방면에서 칼빈이 그러한 연합에 관심을 가지도록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처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교회연합입니다. 부처는 연합을 통하여 개혁운동의 불을 지폈습니다. 비전교회 성도들이 부처를 본받아 교회 연합에 힘쓰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교회연합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어지고, 놀라운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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