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6.10.30 - 프로테스탄티즘 | ||||
---|---|---|---|---|---|
Author | berlin-vision | Count | 96 | Date | 2016/11/05 |
■부흥칼럼(136) ”프로테스탄티즘” 2016.10.30
루터 한 사람의 영향력이 너무 컸습니다. 종교개혁의 진원지, 비텐베르크에서 지펴진 종교개혁의 불길은 독일 제국의 넘어 유럽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는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과 그의 문서 보급이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독일의 오래된 도시 슈파이어(Speyer)에서 1526년 제1차 제국의회를 소집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놀랍게도 독일에 있는 각 주마다 개신교 진영의 제후들이 각 도시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종교개혁을 채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3년 후 황제 칼 5세는 독일 군주들의 세력이 강해진 것을 보고 1529년 3월, 제 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를 소집했습니다. 그때 개신교의 세력 확산에 대한 방안과 이단자 루터를 처형하는 ‘보름스 칙령’을 강행했습니다.
또한 개신교를 믿고 있는 주들은 그 종교를 믿도록 허용하되 다른 주들은 가톨릭을 그대로 믿으라는 내용의 명령을 통과시켰습니다. 더 이상 종교개혁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공포와 명령을 어기는 자들에게는 처벌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종교개혁이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었습니다. 제국의회에 참석한 루터교 대표단은 종교개혁 진영 전체가 말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판단하면서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의 권위를 주장한 대표단은 1529년 4월 25일에 교회와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항의서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슈파이어 항의는 루터가 보름스에서 외친 항의의 확대였습니다. 독일의 군주들과 자유도시들은 루터를 제거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항의서의 주요 골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1526년 제국의회의 결의안에 위배되는 내용에 반대한 것이었습니다.
항의서에는 작센의 선제후 요한, 헤세의 영주 필립을 포함한 14개 제국 도시들의 대표들이 서명했습니다. 루터와 멜란히톤, 슈파이어에 있는 복음주의자들은 눈앞의 위험 앞에 굴복하지 않고 복음적 신앙과 양심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였지만 결국 이 항의서의 내용은 순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항의와 호소로 인해서 루터파는 ‘개신교’(Protestant)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이란 말은 중세기 로마 가톨릭을 반대하고 일어난 모든 종교개혁의 교회들, 곧 개신교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 말의 실제적인 이름은 1529년 독일 슈파이어 제국의회에서 모인 종교회의의 결과에서 나온 이름이며, 그 뜻은 항의주의입니다. 종교개혁 499주년을 맞이하여 생각해 보는 프로테스탄티즘은 종교개혁 운동의 생명적 주장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은 참된 진리 운동을 위한 항의자들이었습니다. 독일의 교회를 진동시킨 힘은 항의자들의 불꽃같은 소리였습니다. 이 불길이 스위스 칼빈과 위그노들에 의하여, 스코틀랜드에서는 존 낙스에 의하여, 17세기 청교도들과 언약도들에 의하여 계속 타올랐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프로테스탄티즘이 일제탄압과 6. 25 전쟁 시에는 순교자의 이름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프로테스탄티즘의 길은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좋아하시면서 가라고 명령하신 길입니다. 그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비전가족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
|||||
Previous | 2016.10.23 – 월요 통일기도회에 다녀와서 | ||||
Next | 2016.11.06 – 종교개혁 499주년 기념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