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6.03.27 - 루터 동역자 카타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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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110 | Date | 2016/04/01 |
■김현배목사 부흥칼럼(105) ”루터 동역자 카타리나” 2016.03.27 1499년 1월 29일에 작센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카타리나는 수녀였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도움으로 수도원에서 탈출합니다. 가난했던 카타리나는 항상 두 가닥의 댕기 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외모나 교양이 특출하지는 않았지만 분별력이 있고 지적이었습니다. 루터보다 16살 연하였지만 그녀는 루터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점점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1525년 6월 13일 저녁에, 루터는 비텐베르크 시교회 부겐하겐 목사의 주례로 26세인 카타리나와 블랙 수도원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친구 슈팔라틴은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라고 말하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카타리나는 대가족을 경제적으로 보살피고자 새벽부터 일어나서 가정 사역에 정성을 다 쏟았습니다. 그녀는 가사를 돕기 위해 수도원 건물 지하에서 맥주를 양조하면서 생활했으며, 정원, 농경지, 밭을 열심히 가꿔 채소를 길렀고, 양봉을 했습니다. 그녀는 경제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자녀들의 필요를 잘 보살피는 훌륭한 독일 주부였습니다. 카타리나의 모범적인 가정생활의 모습은 여러 세기 동안 독일 가정의 모본이 되고 있습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루터가 죽을 정도로 심하게 앓았습니다. 카타리나는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해 당신을 살리겠어요”라며 밤잠을 가리지 않고 극진하게 간호했습니다. 그 덕에 루터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설교하고, 강의하고, 책도 쓸 수 있었습니다. 루터는 아내를 존경했고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는 “나는 프랑스나 베니스를 다 준다 해도 카타리나와 바꾸지 않을 거요.”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루터는 아내 카타리나를 ‘나의 사랑하는 케테, 내 갈빗대, 비텐베르크의 새벽별’이라고 불렀습니다.
카타리나는 종교개혁 이후 첫 번째 개신교 목사 부인입니다. 성직자 독신 생활의 굴레를 벗어나 진리의 자유 안에서 축복된 결혼이라는 진정한 삶을 살아낸 그녀의 신학적 역할은 크고 위대했습니다. 카타리나는 아내로서 그녀는 강직함과 용기, 강한 의지와 큰 사랑을 소유하였습니다. 수많은 사상적 대적들을 늘 곁에 두어야 했던 종교개혁자 남편 루터에게 그녀의 따뜻하며 예리한 조언은 정금같이 귀한 것이었습니다. 루터의 지혜로운 조언자였습니다. 카타리나의 상복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루터가 낙심하며 좌절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을 때, 카타리나는 루터 앞에 상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누가 돌아가셨느냐?”고 묻는 루터의 질문에 그녀는 “하나님이 죽으셨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루터가 화를 내면서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아내가 “만약에 하나님이 죽지 않고 면 당신이 이렇게 좌절하고 낙심할 이유가 무엇이나?”며 루터에게 용기를 주어 일하게 했습니다. 루터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카타리나는 위대한 종교개혁자 남편을 위해 부름 받은 신실한 여종이었습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이 지혜로운 아내 카타리나와 함께 이루어진 신적 작품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종교개혁이라는 전쟁터에서 아내를 통해 받은 힘과 위로를 루터는 “지상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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