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6.03.20 - 성찬의 의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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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65 | Date | 2016/03/20 |
김현배 목사 부흥칼럼(104) 2016.03.20 성찬의 의미
성찬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유월절에 제정된 것입니다. 떡과 포도주는 주님의 찢어진 살과 흘리신 피, 즉 주님의 죽으심에 대한 하나님의 상징적 표시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기억하는 일은 성찬을 거행하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님의 성찬은 희생이 아니라 기억하게 하는 기념의식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을 고백하며, 그들의 왕 되신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찬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몸과 잔에 대한 표현은 교회 역사 내내 매우 다양한 해석을 낳았습니다. 사람의 축복을 위하여 제정되었던 성찬 의식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때때로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부패성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이제 네 가지 견해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첫째, 로마가톨릭교회의 견해입니다. 로마교회는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을 화체설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성찬에 있어서 육체적 의미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뜻합니다. 둘째, 루터파의 견해입니다. 루터파는 문자적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마치 스펀지 안에 물이 들어있는 것과 비슷하게) 빵과 포도주 ‘안(in)과 곁(along with)과 아래(under)에’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셋째, 쯔빙글리의 견해입니다. 쯔빙글리는 성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를 부인하지만,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신앙 속에 영적으로 임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쯔빙글리에 의하면 성찬은 주로 하나의 단순한 표징이나 상징, 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기념, 또는 믿는 자들 편에서 하나님의 고백 행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넷째, 칼빈의 견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문자적으로, 육체적으로, 또는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상징적으로’실재한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 개신교인들은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받는 신자들과 함께 그들 안에 임재하셔서 그들의 믿음과 주님과의 교제를 강화시키고 이를 통해 그들의 영혼을 먹이신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덕과 효과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신자들에게 임재하며 실제적으로 전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한예수교 장로교의 가르침에 따라 칼빈의 견해를 따르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적인 개신교 기독교인들은 성만찬 참여를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개인적으로 약속한 이들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무조건 모든 사람을 위해서 제정된 것이 아니라, 성찬의 영적 의미를 이해하는 신자들만을 위해서 효과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진실한 신자라 할지라도 성찬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영적 상태 하에 있게 될지도 모르므로 자신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고전 11:28-32). 예수님의 죽음의 이타적이고 속죄적인 성격을 올바로 이해해야 하고, 이를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만찬에 합당하지 않다면 하늘나라에도 합당하지 않으며, 마지막 심판 날에도 대비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성례의 영적 유익의 기쁨은 그 참여자의 신앙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로 구원 받았음을 감사하고 다시한번 거룩한 삶을 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을 몰라 방황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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