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5.07.12 – 체코의 개혁자 존 후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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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berlin-vision | Count | 295 | Date | 2015/07/14 |
김현배 목사 부흥칼럼 (72) 2015.07.12. 체코의 개혁자 존 후스
15세기 종교개혁의 새벽별이요 체코의 종교개혁자인 존 후스(Hohn Hus, 1372-1415)의 순교 600주년 기념 행사가 2015년 7월 5일-6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렸습니다. 저는 이 행사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이용웅 선교사님은 이 행사에 참석하여 많은 감동과 도전을 받았다고 전해 주셨습니다. 존 후스는 1372년경 보헤미아(지역적으로 현대의 체코슬로바키아와 유사함)의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1390년 그는 프라하 대학에서 공부하여 문학사,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404년에는 신학사(B. D)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후스는 1402년- 1412년 까지 프라하 소재 베들레헴 채플(Bethlehem Chapel)에서 교구 사제와 설교자가 되어 개혁적 설교를 선포하며 목회하였습니다. 후스는 교황권을 부인하고 오직 성경의 권위와 성경만이 진리라고 주장하였으며, 타락한 로마 교회를 비난하고 종교개혁의 사상을 전파하였습니다. 또한 화체설을 비판하고 제도적 성직자 계급주의적 교회 대신 택자들의 불가시적 교회에 대해 강조했으며, 이것으로 인해 악한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가 거부되고 제도적 교회로부터 성경으로 강조점이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후스는 라틴어가 아닌 자국 언어로 설교했고 성경을 체코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개혁파 보헤미안들은 독일인들이 총사퇴한 프라하대학을 관할하게 되면서 후스를 당 대학의 총장으로 선출하였습니다. 후스의 승진은 단명하였으며 대주교는 베들레헴 채플을 포함해 예배당에서의 후수에 대한 설교금지령을 교황으로부터 얻어내었습니다. 후스는 이에 복종하기를 거부하자 1401년 대주교에 의해 파문을 당하였습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위클리프의 제자라고 공언한 후스는 위클리프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교리적으로 위클리프 보다는 보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후스의 개혁운동은 전국적으로 발전하였으며, 16세기 종교개혁과 개혁주의 교회설립을 미리 예시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보헤미야 남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The Church)’와 ’성직매매(Simony)를 저술하였습니다. 1414년 대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콘스탄스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후스는 황제 지그문트(Sigismund)에 의해 초청을 받고서 다소 주저하였지만 안전을 약속 받으면서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황 요한 22세 추종자들에 의해 투옥되었고 공의회에 의해 공판에 붙여졌으며 결국 이단의 혐의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후스는 자신이 설교했고 가르쳤던 내용들을 철회하기를 거부하여 따라서 1415년 7월 6일 이단으로 정죄 받고 도시의 교회로 끌려가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후스가 화형 당한지 500주년을 기념하여 프라하 광장에 세워진 동상 밑에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라“는 그의 명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와 요한 칼빈보다 먼저 교회 개혁을 부르짖었던 종교개혁의 새벽별 후스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신앙적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후수 순교 600주년을 맞이하여 잊혀져가는 후스의 영성이 우리 비전가족들에게 리바이벌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들도 후수처럼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베를린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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