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얀 후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한가운데에 거대한 청동상이 서 있습니다. 얀 후스(Jan Hus, 1370년경– 1415)의 기념상입니다. 1903년에 주춧돌을 놓았고, 그가 콘스탄츠에서 화형당한 지 꼭 500년이 되는 1915년 7월 6일에 제막되었습니다. 동상을 정면에서 보면 후스는 마치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걸어 나와 우뚝 선 모습입니다. 불길 속에서 걸어 나온 순교자 후스 양편에는 두 무리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성배 문양을 앞세운 후스파 전사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1620년 빌라 호라(백산) 전투 이후 박해로 조국을 떠나야 했던 개신교 망명자들이 있습니다.
후스는 프라하 대학의 교수이자 총장이었고, 베들레헴 채플에서 체코어로 설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혼자서 나타난 인물이 아닙니다. 프라하에서 회개와 개혁을 외친 얀 밀리치 같은 선배 설교자들이 길을 닦았고, 잉글랜드 존 위클리프의 저작이 보헤미아에 전해지면서 후스의 사상은 더욱 날카로워졌습니다. 그의 외침은 분명했습니다. 교회의 참된 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며, 신앙과 삶의 최종 권위는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1412년 그는 면죄부 판매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그 결과 더 무거운 파문 선고를 받았고, 그가 머무는 프라하 전체에 성무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후스는 도시와 성도들을 위해 프라하를 떠나 남부 보헤미아의 시골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농민들에게 설교했고, 『교회론』을 썼습니다.
1414년 후스는 콘스탄츠 공의회에 소환되었습니다. 지기스문트 황제가 신변 안전을 보장했지만, 도착한 지 몇 주 만에 그는 투옥되었습니다. 공의회는 그에게 주장을 철회하라고 거듭 요구했습니다. 후스는 성경으로 자신의 오류를 증명해 준다면 기꺼이 철회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끝내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했고, 1415년 7월 6일 그는 이단으로 정죄되어 같은 날 화형 당했습니다. 그의 재는 라인강에 뿌려졌습니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진리를 찾으라,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라, 진리를 지키라, 죽기까지 진리를 변호하라." 후스의 재는 강물에 흩어졌지만 그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사람들 가운데서 형제단이 생겨났습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 뒤 비텐베르크의 루터는 후스의 글을 읽고 1520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알지 못한 채 후스파였다." 형제단의 후예들은 18세기에 헤른후트에서 모라비안 공동체로 다시 일어나 세계 선교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후스의 생애는 진리가 값싸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는 안전을 약속받았지만 배신당했고, 살 길이 열려 있었지만 그 길이 진리를 버리는 길이었기에 걷지 않았습니다. 불길은 그의 몸을 삼켰습니다. 그러나 그가 붙든 말씀은 불에 타지 않았습니다. 프라하 광장의 후스는 오늘도 불길 속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으로 서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서 있습니까?" 편리한 타협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그의 말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진리는 결국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속화 시대에 후스처럼 위에 굳게 선 사람이 유럽교회 부흥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