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독일통일을 이룬 비스마르크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는 나폴레옹 3세를 물리치고 독일 제2국을 출범했습니다.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 성립을 선포합니다.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1세가 새로운 독일제국의 왕관을 받아 황제 빌헬름 1세가 되었고, 비스마르크는 연방 수상이 되었습니다. 철의 수상. 거울의 방에서 유럽의 잘대 권력은 이제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이라고 선언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제2제국이 막을 내리고, 독일 제2국이 출범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치적. 외교적으로 놀라운 승리를 견인하며 이 모든 일을 완성한 인물이 오토 폰 비스마르크였습니다.
외국에서는 두려워서 피하고 싶어 했고, 프로이센에서는 자유주의자들에게 권위주의자라 매도당했지만, 비스마르크는 많은 독일 국민에게 영웅이었습니다. 1898년 그가 사망하자 독일 전역 여기저기에서 국민 기금을 모아 기념동상을 건립했습니다. 비스마르크를 각자의 가정에 모시기도 했습니다. 조각상들은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영광을 지킨 투사, 국가 안위를 확립한 불굴의 수호자라는 불별의 전설을 전했습니다.
1815년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쇤하우젠(Schönhausen)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아들을 프로이센 국가를 위해 일하는 관료나 외교관으로 성장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김나지움과 그라우에스 클로스터 김나지움에서 공부했으며, 특히 언어와 역사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습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했으며, 이러한 언어 능력은 훗날 외교관과 정치가로 활동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괴팅겐대학교에서 1833년 베를린대학교로 옮긴 그는 법학 공부를 계속했고, 1835년 국가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아헨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1840년대에는 포메른 지역의 경건주의적 귀족들과 교류하며 종교적으로도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이 모임을 통해 독실한 신앙인 요하나 폰 푸트카머(Johanna von Puttkamer)를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1847년 결혼했습니다. 아내의 영향으로 방탕한 생활을 접고 신앙을 받아들입니다. 같은 해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연방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그곳에서 반동적 왕당파로 명성을 쌓으면서 강경 보수파 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859년 러시아 주재 공사, 이어 1862년 프랑스 주재 공사를 지내며 유럽 열강의 역학을 몸소 배웠습니다.
1862년 프로이센 수상 취임 연설에서 비스마르크는 "중대한 문제는 연설이나 다수결이 아니라 철과 피로 해결된다"는 철혈정책을 선언합니다. 이후 1864년 덴마크와의 전쟁, 1866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1870~71년 프랑스와 전쟁에서 전격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대장장이 비스마르크가 1862년에 예견했던 대로 철과 피를 벼려 새로운 독일제국이 탄생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이후 20년 동안 근대 독일의 형태를 완성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독일인이 그를 파괴적이고 분열을 조장하는 인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1871년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통일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에는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