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 대학생들의 선교헌신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난 지 150여 년이 지난 독일은 영적으로 캄캄한 밤과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때 독일에 어두움을 밝히는 각성운동이 일어났으니 바로 경건주의 운동입니다. 경건주의 지도자인 필립 슈페너(Philipp Spener)와 헤르만 프랑케(Hermann Francke)에 의해 일어난 영적 각성운동은 마침내 선교운동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근대 유럽의 선교 운동은 17세기 말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에서 그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프랑케 교수는 할레대학에서 강의하며 성경연구와 기도운동을 일으켰으며, 해외 선교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프랑케의 가르침 아래 할레에서 수학한 두 사람, 바르톨로매우스지겐발크(Bartholomäus Ziegenbalg)와 하인리히 플뤼챠우(Heinrich Plütschau)는 덴마크 왕 프리드리히 4세의 후원을 받아 인도로 파송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되었으며, 1706년 7월 9일 인도 남부의 덴마크 식민지 트랑케바르(현 타밀나두 주)에 도착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함께 덴마크-할레 선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지겐발크는 타밀어를 익혀 신약성경을 타밀어로 완역하는 등 문화와 언어를 존중한 선교 사역의 모범을 남겼으며, 1719년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50여 명의 개종자와 선교 신학교, 방대한 타밀어 사전을 남겼습니다.
플뤼챠우는 수년간 인도 남부에서 사역한 후 귀국하여 할레에서 타밀어를 가르쳤습니다. 할레 출신의 또 다른 선교사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슈바르츠(Christian Schwartz)는 트랑케바르 선교회에서 48년을 헌신하며 인도에서 사역했습니다. 조지 뮬러(George Müller) 역시 할레대학 출신으로, 1832년 영국 브리스톨로 이주하여 고아원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할레대학 출신 젊은 청년들은 선교사로 헌신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할레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의 지원으로 설립된 덴마크-할레 선교회는 첫 번째 개신교 조직 해외 선교 기관으로 평가받으며, 할레는 18세기 해외 선교사업의 교육 중심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의 선교 활동은 이후 독일 선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독일에서는 많은 젊은 대학생들이 불꽃처럼 타오른 선교 열정을 가슴에 품고 복음을 전하러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캠퍼스가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로 가득했고, 성경공부와 기도회로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독일 대학의 기독학생들이 영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선교학자들에 의하면 복음화 율이 4% 이내이면 미전도종족이라 부르는데, 대학 캠퍼스가 점점 선교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독일 대학생들의 신앙 쇠퇴 원인으로는 성경 권위의 상실,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약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마약과 성 중독, 알코올 등 청년 세대의 세속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대학생 전반의 문제인데, 이제 캠퍼스 부흥이 필요합니다. 젊은 대학생들이 회개하고 거룩을 회복하며, 기도와 말씀과 성령 충만에 힘써야 합니다. 캠퍼스에 영적 각성이 일어나 200년 전 선교헌신 운동이 회복되도록 함께 기도에 힘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