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윌버포스의 꿈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의 삶은 깊은 영성과 탁월한 실력을 겸비한 한 평신도의 헌신이 얼마나 큰 역사적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21세의 나이에 영국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1785년, 26세의 윌버포스는 회심을 경험하며 삶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한때 노예선 선장이었다가 회심하여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을 쓴 존 뉴턴(John Newton)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뉴턴은 윌버포스에게 정치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권면하였습니다.
1787년 10월 28일, 27세의 윌버포스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 두 가지 큰 목표를 두셨습니다. 하나는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악습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이 두 문장은 이후 그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사명 선언이 되었습니다. 18세기 말 영국은 노예무역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었습니다. 당시 영국 무역 수익의 상당 부분이 노예제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1789년 5월, 윌버포스는 영국 하원에서 노예무역 폐지를 촉구하는 첫 번째 대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노예무역의 실태를 상세한 증거와 함께 제시하며 의원들에게 도덕적 책임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을 지키려는 노예무역 상인들과 농장주들, 그리고 그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저항하였습니다. 윌버포스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윌버포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런던 남부 클래펌(Clapham) 지역을 중심으로 모인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이른바 '클래펌 공동체(Clapham Sect)'가 그의 든든한 동역자였습니다. 이들은 노예무역 폐지 운동을 위해 청원서를 모으고, 여론을 형성하고, 의회를 설득하는 일에 함께하였습니다. 윌버포스는 이들과 함께 약 20년에 걸쳐 끈질기게 싸웠고, 마침내 1807년 영국 의회는 노예무역 폐지법(Slave Trade Act)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윌버포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미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일, 즉 노예제도 자체의 폐지를 위한 싸움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평생 결핵과 심한 장 질환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이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1833년 7월 26일, 영국 의회는 대영제국 전역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노예해방법(Slavery Abolition Act)을 통과시켰습니다. 윌버포스는 이 소식을 들은 지 사흘 후인 7월 2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꿈을 품은 지 46년 만에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영국의 양심'이라 불렀습니다. 한 사람의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의회 안에서, 법과 제도의 언어로, 수십 년의 인내로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 요셉이 오랜 고난 끝에 꿈을 이루었듯, 윌버포스는 포기하지 않는 믿음으로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드십시오. 비전공동체에서 제 2의 윌버포스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