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5세 황제
부흥칼럼(594) 칼 5세 황제 2026.02.01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칼 5(Karl V, 1500~1558)는 누구인가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역사 철학자 토마스 칼라일이 말한 “역사는 위대한 인물의 역사다”라는 문장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1474년부터 ‘독일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국호가 공식적으로 등장합니다. 이후 프리드리히 3가 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였고, 그의 아들 막시밀리안 1가 제국의회에서 최종 확정함으로써, 이 명칭은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공식 국호로 유지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제국의 정점에 서 있던 인물이 바로 칼 5였습니다.
막시밀리안 1의 손자였던 칼 5는 부모와 조상의 정치적 유산, 특히 할아버지의 치밀한 혼인 정책 덕분에 상상을 초월하는 영토를 물려받았습니다. 황제 칼 5(재위 1519~1556)는 1516년 외할아버지의 사후에 스페인 왕위까지 계승하였고, 기존의 오스트리아 중심 중앙유럽 영토에 스페인, 이탈리아 남부, 북아프리카 해안 지역이 더해졌습니다. 더 나아가 스페인·네덜란드, 이탈리아 일부와 아메리카 식민지까지 다스렸고, 스페인이 개척한 아메리카 신대륙의 멕시코, 페루, 칠레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 아래 들어왔습니다. 필리핀 또한 그의 이름으로 통치되었습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다스린 황제였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칼 5는 16기 유럽을 거의 한 손에 쥔 초강대 군주요, 신성 로마제국 황제이자 스페인 국왕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절정에 선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넓은 영토 때문에 평생 전쟁과 정치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칼 5는 권력을 내려놓고 은퇴한 뒤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상 최강자였지만, 가장 피곤했던 황제”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칼 5를 이해하면 종교개혁 역시 보다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그의 통치 아래서 1529년 ‘프로테스탄트’라는 명칭이 등장했고, 1530년에는 개신교 신앙의 기초 문서인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슈말칼덴 전쟁에서 그는 프로테스탄트 동맹을 제압하고 마침내 비텐베르크를 점령합니다. 그러나 루터는 그보다 1년 먼저 상을 떠나 이미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안장된 상태였습니다. 부하들이 루터의 무덤을 파헤쳐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겼을 때, 칼 5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산 자와 싸우지, 죽은 자와 싸우지 않는다.” 오늘날까지 루터의 무덤이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남아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 가톨릭 황제의 절제된 판단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칼 5는 루터 못지않게 유럽 역사를 움직인 거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두 거인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자리가 바로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였습니다. 계 최강의 황제 앞에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던 루터의 신앙적 용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우리는 보름스에서의 루터를 기억합니다. 그 배경에 서 있던 황제 칼 5를 이해할 때 종교개혁의 역사는 비로소 온전히 보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