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
부흥칼럼(591)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 2026. 1.11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서로 다른 나라, 다른 언어, 다른 장르에서 활동했지만 문학사에서는 늘 함께 언급되는 이름들입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대를 살았고, 공교롭게도 1616년 같은 해, 같은 달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르반테스는 1547년 9월 29일, 스페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태어나 10월 9일 유아세례를 받았고, 1616년 4월 22일 마드리드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스페인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소설 돈키호테입니다. 반면 셰익스피어는 영국 르네상스, 곧 엘리자베스 시대를 배경으로 활동하며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맥베스, 오셀로와 같은 불후의 비극들을 남겼습니다.
세르반테스가 살던 스페인은 펠리페 2세 시절, 무적함대를 앞세워 영국을 가톨릭화 하려다 실패하며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제국의 몰락과 함께 그는 전쟁 포로, 경제적 궁핍, 잦은 좌절을 겪는 굴곡진 삶을 살았스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는 출간 당시 전편이 약 3만 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신대륙까지 전해졌습니다. 심지어 정식 속편이 나오기 전, 가짜 속편이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르반테스는 이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영국은 급부상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는 생전에 큰 명성과 부를 누렸고, 극작가이자 배우, 극장 공동 소유주로서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 세계는 밝은 성공담보다는 인간의 욕망, 죄, 배신, 죽음 같은 어두운 주제들로 가득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깊고 슬픈 비극들을 써 내려간 사람이 오히려 가장 잘 나가던 인물이었다는 점은 묘한 역설을 낳습니다. 신앙의 시선으로 본 아이러니입니다.
이 두 인물의 대비는 신앙적인 성찰을 불러일으킵니다. 고난 속에 있던 세르반테스는 웃음과 희망의 상상력을 선택했고, 성공의 정점에 있던 셰익스피어는 인간 내면의 어둠을 직시했습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역설과도 닮아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 수 있고, 성공은 오히려 교만과 영적 방심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유머와 풍자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상상력과 생명의 기쁨을 붙드는 태도처럼 보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인간이 하나님 없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영적 해부도와 같습니다.
인생이 힘들고 버거울수록 우리는 세르반테스처럼 웃음과 소망을 선택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인정받을수록 셰익스피어처럼 자기 내면의 어둠과 죄성을 성찰하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신앙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맡겨진 자리에서 의미를 만들어 갈 때, 우리의 인생 또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그러했듯, 웃음과 눈물 모두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