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루터포드의 회심
부흥칼럼(492) 2023. 10.15
사무엘 루터포드의 회심
저는 오랜만에 세인트 앤드류스(St ANDREWS)를 탐방했습니다. 이 도시에서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이 시작됐습니다. 패트릭 해밀턴과 조지 위샤트가 화형당한 장소와 함께 사무엘 루터포드의 무덤을 찾아갔는데 감동이었습니다. 사무엘 루터포드(Samuel Rutherford, 1600-1661)는 언약도의 성자입니다. 그는 에든버러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에딘버러 대학에 조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루터포드의 회심 시기와 정황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1620년경 약 20세쯤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기를 열망하였습니다. 졸업 후 그는 특별한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무엘 루터포드는 교수 사역 중 추문으로 인해 교수직에서 물러납니다. 물론 나중에 루터포드를 몰아내고 감독주의자를 기용하려는 음모였다고 알려졌지만 그로 인해 그는 개인적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었으며 영혼의 어두운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시련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루터포드는 자신의 심령 속에 남아있는 죄의 부패한 찌꺼기를 보게 되었고 몸소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인생이 가장 힘들고 폭풍 가운데 있을 때 주님이 루터포드에게 찾아 오셔서 그를 만나 주심으로 그는 주님을 만나는 회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루터포드의 회심의 흔적은 그가 변화되고 십자가 사건에 대한 감사와 감격에 사로잡힘과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순종하는 삶 속에 잘 나타났습니다.
루터포드는 귀부인 켄 무어에게 “나의 왕 되신 예수를 위하여, 그의 왕권을 위하여, 그리고 성부께서 그에게 주신 그의 나라의 자유를 위하여 고난 받는 삶을 살게 하셨다”라는 글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회심 사건 이후 루터포드는 완전히 변하게 되었고 오직 주님만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구원하는 믿음에 이른 루터포드는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 앞에 굴복하였고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영혼들에게 설교하며 돌보는 데 헌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장로교주의를 훼손시키는 감독주의와 알미니우스주의를 비판하는 설교와 저서 때문에 목회지를 박탈당하고 아버딘으로 추방당했습니다. 루터포드가 강단을 빼앗기고 투옥되었을 때에도 그의 신앙은 꺽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단에서는 쫓겨났지만 주님에게서는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혹한 핍박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승리자이며, 주님 때문에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간 신실한 사역자입니다. 진리가 결과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한 루터포드는 성경적 진리를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신실함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적 진리를 쉽게 타협해 버리고 있는 이 시대에 루터포드의 신앙은 큰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적 타협의 길을 통해 교회의 영향력을 더 넓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교훈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선택해야 하며, 루터포드처럼 성경적 진리를 결코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한 신실한 사역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더 확장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