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츠빙글리의 성만찬 논쟁
부흥칼럼(185) 2017. 10. 08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만찬 논쟁
16세기 마틴 루터 종교개혁 당시에 독일과 스위스 지역의 프로테스탄트들의 연합은 매우 긴박한 요구였습니다. 반교황적 정서를 지닌 헤센의 제후 필립(Philipp von Hessen, 1504-1567)은 개신교를 지지했던 가장 중요한 영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필립은 두 사람의 상이한 견해차를 해소하고 하나의 연합을 이루어 보기 위해 1529년 10월 1-3일, 독일 마부르크(Marburg)에서 회담을 개최했습니다. 마부르크 회담에 초청받은 양측의 인사들은 독일 쪽에서는 루터와 멜란히톤이, 스위스 쪽에서는 츠빙글리와 부처가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두 개혁자 루터와 츠빙글리는 이신칭의, 성경의 권위, 만인 제사장, 오직 예수 등 14개조의 교리 항목에 대해서는 모두 합의했지만 단 15번째 항목인 성찬론에 대한 견해 차이는 컸습니다. 물론 성찬에 있어서 루터와 츠빙글리 모두 로마 가톨릭교회의 화체설(transubstatiation)이 큰 오류임을 확신하면서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께서 실재로 임재 하신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의 견해 차이가 크게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3일간 대화와 토론을 전개했으나 좀처럼 견해차를 좁힐 수 없었습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성찬상의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체적 임재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어디에나 계시는 그리스도의 편재성에 근거하여 실재론적 견지에서 자신의 실재 임재의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이 그 떡에 공존한다는 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믿었습니다. 반면에 주의 만찬에 대한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의 견해는 루터와 달리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츠빙글리는 성찬의 떡은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한 회상이며, 갈보리에서 단번에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즉 그는 상징설을 주장한 것입니다. 두 사람의 주장은 ‘공재’ 와 ‘상징’의 대립으로 축약됩니다. 이들 간의 상이한 견해 때문에 루터와 츠빙글리 양측은 결국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루터를 중심으로 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루터파(Lutheran)를 형성하게 되었고, 츠빙글리와 칼빈을 중심으로 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개혁파(Reformed)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루터파와 개혁파들의 성만찬에 대한 견해가 나누어진 것입니다. 사실상 이들 모두는 패배자였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개신교회는 두 가지 전통, 즉 루터주의와 칼빈주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상 루터파와 개혁파 교회들 사이의 분열은 큰 아픔입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성찬 때문에 서로 경직되어 버렸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사실입니. 교회 분쟁은 추태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의 책 “청교도”에서 “루터파와 개혁파 사이의 분쟁이 로마 가톨릭의 모든 천둥 벼락이 합세한 것보다 더 큰 해를 참 종교에 끼쳤다”고 주장했습니다. 개신교가 지난 수 세기동안 분열된 채 남아 있게 된 일은 슬픈 일입니다. 분열은 엄청난 죄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진리 안에서 서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 연합을 위한 불타는 열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힘써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 되는 일에 힘쓸 때 교회 부흥은 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