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품은 언더우드 선교사
김현배목사 부흥칼럼(31) ”조선을 품은 언더우드 선교사” 2014.09.14
초기 선교사가 들려주는 한국 복음이야기 “복음에 미치다” (이용남 선교사 저, 두란노)라는 책이 2007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 조국에 복음이 들어오기까지의 이야기와 조선을 품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서 너무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에게 책을 소개하기도 했고 또 어떤 경우는 사서 선물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의 눈믕 열렀던 많은 선교사들 가운데 저는 오늘 초기 장로교회 뿌리인 언더우드 선교사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언더우드는 1859년 영국 런던에서 아버지 존과 어머니 엘리자벳 사이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신학교 마지막 해에 뉴 저어지에 있는 교회를 맡았습니다. 그 후 계속 목회를 맡아 달라고 요청이 있었으나 그는 거절하고 선교사로 외국에 나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무렵 언더우드는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나눴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조선에 대해 반응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조선이라는 나라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한국에 대한 선교사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한 사람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어느 교회도 손댈 눈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외국 선교사업에 종사하는 지도자들까지도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시기상조란 기사를 쓰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때였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그 땅, 주님이 기다리시는 그 땅으로 갈 선교사가 이렇게도 없단 말인가!” 당시 언더우드는 인도 선교사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지만 한국 선교에 대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심을 깨닫고 한국으로 갈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언더우드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셨습니다. 1885년 드디어 언더우드가 한국에 도착하였습니다. 외국인으로서 견디기 힘든 날씨 속에서도 언더우드는 곧 바로 봉사활동과 성경번역, 영한사전, 한영사전을 편찬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고아원 설립을 통해 대학교, 고등학교 등 많은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게 만들었고 노도사 (노춘경)에게 세례를 베풀고, 새문안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더 나아가 북한 전도, 그리스도 신문 간행과 기독교 청년회 설립 등의 사역을 계속했으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나중에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 전문학교를 설립하는 등 목숨을 건 선교활동을 펼쳐나갔습니다. 그는 운명할 때까지 한국을 매우 사랑하였습니다. 26세의 젊은 선교사 언더우드는 한 번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민족을 위해 하나님 앞에 눈물의 기도와 복음전파로 인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을 품은 하나님의 사람 언더우드 선교사의 열정을 본받아 이제 우리 비전교회 성도들은 베를린과 독일 그리고 유럽에 복음 전달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때는 기독교 나라였지만 이제는 선교지가 되어버린 침체된 유럽 땅을 향해 EM 47 비전을 가슴에 품고 복음 들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이미 1년 전에 비전 베를린 구원선과 유럽 선교선을 출항하였습니다. 때로는 파도와 폭풍이 몰아친다 할지라도 항해는 멈추는 일이 없고 계속 항해하면서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십자가의 군병으로서 예수꾼, 성령꾼이 됩시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부흥 베를린, 예수 유럽을 사모합시다.